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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수천억 빌려주고 이자만 150억…사채업자 뺨치는 신탁사 '갑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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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을 진행 중인 A 시행사. 토지 매입과 공사 비용 등 초기 개발 자금이 부족해 부동산 신탁사인 B로부터 돈을 끌어왔다. 이 과정에서 일부 자금은 B 신탁사의 임직원들이 개인 명의로 따로 설립한 또 다른 회사들에 빌렸다. 이렇게 임직원에게 빌린 자금 일부는 1년 이자가 100%로, 법정 금리(연 20%)를 훌쩍 뛰어넘는 고리였다. 하지만 B 신탁사와 사업을 계속 진행해야 하는 A 시행사는 울며 겨자 먹기로 임직원들에게 높은 이자를 챙겨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식으로 A 시행사가 B 신탁사 임직원들에게 빌린 돈은 총 25억원인데, 지급한 이자만 7억원(연 28%)에 달했다.



돈 꿔주고 개발 이익 45% 요구한 신탁사



부동산 PF 시행사에 불법 사금융과 다름없는 이자 장사를 한 부동산 신탁사 대주주 및 임직원이 적발됐다. 고금리와 부동산 경기 침체로 지금 구하기가 어려워진 시행사의 처지를 악용한 것이다. 7일 금융감독원은 부동산 신탁사에 대한 검사 결과를 발표하고, “신탁사 대주주 및 임직원의 사익 추구 행위 등을 다수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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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 구조 및 부동산 신탁사 역할. 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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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PF는 공사를 본격 진행하기 전에 시행사가 토지를 먼저 매입하고, 관련 사업 진행을 위한 인허가를 받아야 한다. 이 과정에서 신탁사는 토지 매입 등 개발 비용을 직접 빌려주거나, 다른 곳에서 끌어온 개발비를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한다. 자금이 부족한 시행사일수록 신탁사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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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부동산 신탁사 검사 결과 확인된 부당행위. 금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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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금감원 검사 결과 신탁사들은 이런 시행사의 어려운 처지를 악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경우가 다수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A 시행사처럼, 신탁사 임직원들에게 고금리로 자금을 빌려주면서 이자를 챙겨주는 방식이다. 실제 C 시행사는 D 신탁사의 대주주와 계열사에 토지 매입 자금 명목으로 20여회에 걸쳐 1900억원 상당을 빌렸다. 이 중 이미 지급한 이자만 150억원(평균 연 18%)에 달했다. 일부 자금은 시행사가 받을 개발 이익의 45%를 이자 명목으로 주기로 계약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사실상 신탁사 대주주와 임직원들이 시행사를 대상으로 미등록 불법 대부업을 한 셈”이라며 “겉으론 돈을 빌려주는 형식을 취했지만, 시행사가 신탁사와 관계 유지를 위해서 신탁사 대주주와 임직원들에게 개발 이익 일부를 챙겨준 것으로 의심해 볼 수 있다”고 했다.



용역업체에 돈·법카 받고, 개발 정보로 투기



신탁사의 이런 ‘갑질’은 시행사뿐 아니라 거래하는 용역 업체에도 이뤄졌다. E 신탁사의 대주주와 임직원은 자신들이 거래하는 분양 대행업체 등에 45억원 상당의 금품과 법인카드를 받아 개인적으로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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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감원 부동산 신탁사 검사 결과 확인된 부당행위. 금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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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개발 사업 과정에서 취득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한 사례도 적발했다. F 신탁사 직원들은 개발 사업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정비구역 지정 일정, 예상 분양가 등 사업 분석 자료를 확인했다. 이를 이용해 같은 사업장 내 다른 아파트 및 빌라를 매입했다. 금감원은 인근 신축 아파트 시세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 수억원 상당의 개발 이익을 얻을 것으로 추정했다.



자녀 회사 미분양 오피스텔, 직원에게 분양



이 밖에 자신의 자녀 회사가 시행하는 오피스텔에 미분양이 많자, 직원 40여명에게 45억원 상당을 빌려주고 미분양 오피스텔을 분양 받게 한 신탁사 대주주도 있었다. 분양률이 올라가면 시공사는 중도금 대출의 연대 보증 한도를 올려야 한다. 이 때문에 의도적으로 분양률을 올렸다면 시공사에 대한 기망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게 금감원 판단이다.

금감원은 검사 결과 확인된 신탁사 대주주와 임직원의 위법·부당행위에 대해서 수사 당국에 위법사실을 통보하고, 입증 자료를 공유했다고 밝혔다. 금감원은 “앞으로도 부동산 신탁사에 대한 테마 검사를 지속 실시하고, 불건전 영업행위 등을 집중적으로 점검함으로써 자본시장의 질서 및 신뢰회복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김남준 기자 kim.nam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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