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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생존 해병대 장병 "윤 대통령님, '채상병 특검법' 수용해주십시오" 공개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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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해병대 채 상병 사망사건에 대한 특검법이 통과된 데 대해 대통령실이 '나쁜정치'라며 거부권을 시사한 가운데, 사건 당시 생존했던 해병 2명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공개편지를 통해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

7일 군인권센터는 "고 채 상병과 함께 실종자 수색 작업 도중 급류에 휩쓸렸다 구조된 예비역 생존해병 2명이 윤석열 대통령에게 '채 상병 특검법' 수용을 촉구하고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달라는 취지를 담아 공개 편지를 작성해 군인권센터로 전해왔다"며 편지 내용 전문을 공개했다.

이들은 편지에서 "대통령님. '채 상병 특검법'을 수용해주십시오"라며 "채 상병 특검법을 '죽음을 이용한 나쁜 정치'라고 표현한 대통령실의 입장을 뉴스로 접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저희마저 수근이의 죽음을 이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사고가 발생하고 벌써 9개월이 지났습니다. 이만큼 기다렸으면, 이제는 특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않겠습니까?"라며 "진실을 알고 싶습니다. 피해 복구를 하러 간 우리를 아무 준비도 없이 실종자 수색에 투입한 사람은 누구입니까?"라고 물었다.

이들은 "가만히 서있기도 어려울 만큼 급류가 치던 하천에 구명조끼도 없이 들어가게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둑을 내려가 바둑판 모양으로 흩어져 걸어 다니면서 급류 속에서 실종자를 찾으라는 어이없는 판단을 내린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리고 현장과 지휘 계선에 있었던 모두가 누구의 잘못인지 잘 알고 있는데 아직도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이유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이들은 "저희는 정치에 별 관심 없었던 평범한 20대였습니다. 하지만 눈앞에서 수근이를 놓쳤던 그 때처럼, 수근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미안함을 반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용기 내 부탁드립니다"라며 "대통령님. 거부권을 행사하지 말아주십시오. 저희가 대한민국의 국민임이 부끄럽지 않게 해주십시오"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저희와 수근이 모두 내가 나고 자란 나라를 지키고자 남들이 말린 힘든 해병의 길을 스스로 선택했습니다. 이런 저희에게, 그리고 해병대를 믿고 하나 뿐인 아들을 맡기신 수근이 부모님께 진실을 알려주는 것은 나라의 당연한 책무"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사고가 발생했던 지난해 7월 19일이 이제 약 두 달 남았다면서 "두 달 뒤면 수근이 1주기입니다. 수근이를 기리는 자리에 사령관님, 사단장님 같은 분들도 아무렇지 않게 참석하시겠지요. 하지만 저희는 그런 자리에 가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두려움과 분노를 견디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수근이를 맘껏 그리워하고, 솔직하게 미안해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후임들은 현역 군인이니 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 죄진 것 없이 죄지은 마음으로 다녀올 것입니다. 그래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용기 내 대통령님께 보내는 편지를 쓰게 되었습니다"라고 편지를 작성하게 된 이유를 밝혔다.

이들은 채 상병 사망을 둘러싼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들은 "조사를 나왔던 군사경찰 수사관님에게 그 날 있었던 일들을 사실대로 얘기했으니 수근이와 부모님의 억울함과 원통함은 나라에서 잘 해결해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수근이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열심히 사는 것이 전우인 저희에게 남은 몫이라 생각했습니다"라며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수근이의 죽음을 잊지 않고 제대로 기억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책임질 일이 있다면 당연히 책임질 거라며 눈물을 참던 중대장님은 여단의 다른 보직으로 전출되셨고, 늘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시던 대대장님은 보직해임 되어 떠나셨습니다. 수사를 받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위험하고 무리한 작전을 지시했던 사단장님과 여단장님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 자리를 그대로 지켰습니다"라고 지적했다.

이들은 "뉴스에서는 사단장님이 자기가 모든 책임을 지겠으니 부하들을 선처해달라는 말을 했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현실은 거꾸로였습니다. 모든 책임은 부하들이 지고, 선처는 사단장님이 받았습니다"라고 현재 상황을 꼬집었다.

이들은 "그 뒤로 9개월 동안 수근이와 저희가 겪었던 끔찍한 일이 매일 뉴스가 되었습니다. 서로의 마음이 걱정되어 꺼내지 못했던 수근이 이야기는, 이제 서로의 안위를 위해 이야기 할 수 없는 주제가 되었습니다. 누구나 말하는 주제였지만, 저희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부대 분위기가 사나워 다들 쉬쉬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편지를 받은 군인권센터는 "두 예비역 해병이 전해 온 진심이 특검법이 통과되기 무섭게 '특검법 통과는 나쁜 정치'라고 맹비난한 대통령에게 과연 '나쁜 정치'란 무엇인지 다시 고민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특검법 수용은 순리다. 국민의 분노를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라고 밝혔다.

앞서 지난 2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순직 해병 진상규명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 임명 등에 관한 법안'(채 상병 특검법)이 통과되자 정진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브리핑을 통해 "민주당의 특검법 강행 처리는 채 상병의 안타까운 죽음을 이용해서 목적으로 악용하려는 나쁜 정치"라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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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7월 22일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 체육관인 '김대식관'에서 열린 고 채수근 상병 영결식에서 해병대원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채 상병은 지난 19일 오전 9시께 예천 내성천에서 실종자를 수색하던 중 급류에 휩쓸려 숨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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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취임 이후 9번 거부권을 사용했던 윤 대통령은 이번에도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다만 채상병 특검법에 대한 찬성여론이 높고 국회 역시 여소야대 국면인 상황에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이전과는 다른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2일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 등 4개 여론조사기관이 격주 정례 시행하는 '전국지표조사(NBS)' 5월 1주치에 따르면, 채상병 특검법의 제21대 국회 처리에 대한 의견은 찬성 67%, 반대 19%로 조사된 바 있다.

위 조사는 지난달 29일부터 사흘간 전국 만 18세 이상 1000명을 대상으로 휴대전화 가상번호를 이용한 전화면접 방식으로 시행됐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 응답률은 14.6%다. 조사 관련 상세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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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일 군인권센터가 공개한 생존해병 편지. 센터는 "어렵고 힘든 시간을 겪어온 예비역 해병들의 신상을 보호하기 위하여 부득이 이름을 공개하지 않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란다"며 이들을 해병 A,B로 전했다. ⓒ군인권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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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기자(jh1128@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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