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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달러값 더 뛰면 ‘제2의 아시아 외환위기’ 올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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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2일(현지시각)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환전소에서 직원이 달러를 들고 있다. AF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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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달러 강세가 세계 경제에 그늘을 깊게 드리우고 있다. 달러는 세계의 공장인 아시아 주요 국가의 통화인 한국 원, 일본 엔, 중국 위안에 대해 특히 강세를 보여, 세계 경제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미 경제 호조·고금리…강달러 언제까지





달러는 올해 들어 전세계 주요 통화에 대해 강세를 보이고 있다. 블룸버그가 추적하는 150개 통화 중 3분의 2가 올해 달러에 약세를 보이고 있다. 달러 강세는 미국 기준금리(5.25~5.5%)가 20년 만에 최고를 유지하는데다 미국 경제가 상대적으로 호조를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미국에서 물가 오름세(인플레이션) 기조가 여전해, 금리 인하가 예상과는 달리 미뤄지면서 달러 강세는 더 힘을 받고 있다.



달러 강세로 일본 엔 가치는 지난달 29일 달러당 160엔대까지 추락하며 34년 만에 최저 수준을 보였다. 주요 통화들은 올해 들어서 적게는 -1%에서 많게는 -10%까지 가치가 떨어졌다. 같은 날 기준 엔은 약 -10%, 한국 원 -6.5%, 유로 -3%, 중국 위안 -2.1%, 브라질 헤알 -5%, 남아공 랜드 -1.9%, 오스트레일리아 달러는 -3.9% 가치가 하락했다.





달러 강세 땐 국제 물가 오르고 미국 물가 안정





외환 결제의 90%를 차지하는 달러 강세의 여파는 빠르고 전방위적으로 미친다. 달러 강세는 미국 외의 국가들에서는 수출 경쟁력을 높이고 수입 물가를 높인다. 반대로 미국에서는 수출 경쟁력을 낮추고 수입 물가를 낮추는 작용을 한다. 달러 강세가 진행되면 국제적인 물가 오름세를 부르지만 상대적으로 미국의 물가는 안정된다.



물가 오름세는 미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인 문제이다. 미국은 물가 때문에 고금리를 유지하고 있고, 이 때문에 달러가 강세이지만 물가 오름세는 여전하다.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는 지난 1일 기준금리를 동결한다며 낸 성명에서 “인플레이션이 2%를 향해 움직인다는 보다 큰 확신을 얻을 때까지” 기준금리 인하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미국은 당분간 달러 강세를 유지할 수밖에 없고, 이는 다른 나라들의 인플레이션에 더욱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문제는 달러 강세가 잦아들지 않고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골드만삭스는 지난달 말 낸 보고서에서 달러가 “더 오랫동안 더 강세가 되면서 문제를 주는” 요인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주요 6개 통화(유로, 엔, 영국 파운드, 캐나다 달러, 스웨덴 크로나, 스위스 프랑)에 대한 달러의 가치를 보여주는 지표인 ‘달러 인덱스’는 미국이 급격히 금리를 올리고 있던 2022년 10월10일 110.31로 올라섰다가 지난 3일 105.03으로 내려왔다. 달러 인덱스는 1973년 3월을 100으로 해 기준점을 삼고, 이보다 높으면 달러 가치 상승을, 낮으면 하락을 의미한다. 달러 인덱스 추이로 보면, 미국 경제 호황과 고금리가 지속되면 달러 가치가 더 오를 소지가 충분하다는 점을 볼 수 있다.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등 자본유출 심각





추가적인 달러 가치 상승이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같은 사태를 부를 우려도 커지고 있다. 명목 국내총생산(GDP) 기준 동남아시아 최대 규모 경제인 인도네시아는 지난달 23일 기준금리로 쓰이는 7일물 역환매채권(RRP) 금리를 연 6.00%에서 6.25%로 25bp(1bp=0.01%포인트) 인상했다. 인도네시아 중앙은행이 2016년에 7일물 역환매채권 금리를 기준금리로 삼은 이래 최고치다. 인도네시아 당국은 달러 강세로 인한 자국 통화 약세 및 자본 유출이 심각하다고 보고 금리 인상에 나섰다. 페리 와르지요 인도네시아 중앙은행 총재는 “금리 인상 결정은 (인도네시아) 루피아 환율을 안정시키고 악화하는 글로벌 리스크 영향을 줄이기 위한 선제적이고 미래 지향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동남아 다섯번째 규모 경제인 말레이시아의 안와르 이브라힘 총리는 지난 1일 노동절 연설에서 1998년 이후 최저치에 근접하고 있는 말레이시아 링깃화 가치 하락이 “우려되지만 통제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그는 이날 공무원 급여 13% 상승 등을 발표하며 링깃 가치 하락과 물가 상승으로 인한 민심 동요를 달래려 애썼다.



동남아시아 두 경제 대국의 풍경은 1997년 7월 타이 밧화의 급격한 평가절하로 시작된 아시아 외환위기 전야를 연상케 한다.



당시 아시아 외환위기는 1995년 2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1년 전에 견줘 두배인 6%로 올리는 통화수축 정책이 계기였다. 아시아 각국 경제가 침체로 들어가는 상황에서 미국의 고금리로 달러 가치가 급격히 치솟자, 아시아 각국은 외환위기에 봉착했다.





1997년 외환위기 면한 중·일도 이번엔 ‘위기의식’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 아시아 경제의 두 거인인 중국과 일본은 제외됐는데, 이번에는 두 나라도 예외가 아니라는 점이 더욱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달러 강세는 세계 제조업의 본산인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에서 파장이 크다. 이 때문에 한·미·일 3국 재무장관은 지난달 말 워싱턴 회의에서 “외환시장의 사태 전개에 긴밀히 협의한다”며 “최근 일본 엔 및 한국 원의 평가절하는 일본과 한국에 심각한 우려”라고 밝혔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지난 3월 금융정책결정회의를 열어 단기 정책금리를 0.1%포인트 이상 올려 0~0.1%로 금리를 인상했다. 오랜 저성장 때문에 17년 동안 유지하던 제로 금리에서 탈출했지만, 경제 성장을 억제하지 않는 수준으로 금리 인상을 하면서 엔 약세를 유지해야 하는 사정이 있다. 일본은행이 지난달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참석자 만장일치로 현재 기준금리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결정한 이유다. 그러나 과도한 엔 약세는 일본 경제에 대한 신뢰감을 상실하게 해서 자본 유출을 가속화할 수 있다.



달러 강세가 중국에 미치는 파장은 더 크다. 중국 경제는 최근 부동산 위기와 국내 소비 저조로 디플레이션 조짐까지 보였다. 중국은 2008년부터 달러에 대한 위안 가치를 달러당 7위안 내외로 엄격하게 관리해왔다. 최근 들어서는 위안의 달러당 7위안 이상 가치 절하를 용인할 움직임도 예상된다. 국내 경기 부양과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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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 저가수출…아시아 경제위기·서방 무역분쟁 악화





중국 위안 약세로 인한 중국 제품의 경쟁력 강화는 수출에 기대는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를 더욱 곤경에 처하게 할 것이 분명하다. 이는 아시아 외환위기 같은 사태를 야기하는 또 다른 요인도 될 수 있다. 아시아개발은행에 따르면, 코로나19 세계적 대확산 사태를 거치면서 아시아 개발도상국의 국가부채가 2019~2021년 사이 평균적으로 국내총생산의 8% 이상으로 늘어난 것도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최근 미국 등 서방은 중국의 ‘과잉생산’을 문제 삼고 있다. 달러 강세로 중국 위안 절하가 계속되면, ‘과잉생산’된 중국 제품들이 수출 경쟁력을 더 갖추고 서방 시장에 더 많이 넘쳐나게 된다. 이는 중국과 미국 등 서방과의 무역분쟁 악화를 예고한다. 중국이 달러 강세에 맞춰 추가적인 위안화 절하로 방향을 잡는다면, 이는 전례 없는 환율 및 무역 전쟁의 문을 열 수 있다.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달 23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최근 달러 강세와 다른 국가의 통화 절하에 대해 “내가 대통령일 때 일본과 중국에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데 많은 시간을 썼다”고 적었다. 그는 대통령 재직 때 중국과 일본 등이 환율 조작을 한다고 비난하며, 중국 등과 거친 무역전쟁을 마다치 않았다. 하지만 트럼프의 재임 기간(2017년 1월~2021년 1월)에도 달러 강세가 진행됐다.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달러 강세는 아시아 등 신흥국 경제뿐만 아니라 미국에도 악영향을 줘서 무역전쟁을 격화시키고, 이는 다시 달러 강세를 부추길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어른거리고 있다.



정의길 선임기자 E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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