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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7 (월)

20대가 적어서, 아이 없어서 ‘더 내고 더 받는’ 연금 선호한다고?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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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김상균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 공론화위원장이 지난달 22일 국회 소통관에서 숙의토론회 및 시민대표단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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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개혁 공론화 결과의 의미 ①



홍원표 |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사업국장



국민연금개혁 공론화 결과 발표 이후 많은 말들이 오가고 있다. 다양한 의견들이 오가는 게 민주주의니 이는 당연하고 또 필요하다. 하지만 성숙한 민주주의가 되기 위해서는 좀 더 곰삭은 말들이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숙의 과정이 필요한 까닭이다. 공론화 과정에 참여한 500명의 시민대표단은 압축적으로 이 과정을 거쳐 결과를 내놓았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각기 다른 의견들을 모으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서 그 과정과 결과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한 과정이 끝났다고 해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많은 말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모든 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지혜가 있습니다.’ ‘모든 생각은 타당합니다.’ 이번 공론화 과정의 시작이었던 의제숙의단 워크숍의 토론 규칙이었다. 모든 생각이 타당하다는 말은 ‘네 말은 타당하지 않아’라는 말의 타당성과 충돌한다. 모든 생각이 타당해지려면, 모든 이들이 같은 무게로 존중받아야 한다.



연금개혁 공론화는 국회 연금개혁특별위원회가 결정하고 추진했다. 그런데 정작 연금특위 간사위원을 맡고 있는 한 정치인은 공론화 결과가 나오자 “연금개혁 자체가 근본적으로 공론화에 적합한 의제가 아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숙의민주주의를 거친 시민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연금특위 결정 사항을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한 연금 전문가는 시민대표단에 20대가 적어서 소득보장 강화 선호가 높게 나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다 20대도 소득보장 강화 의견이 다수였다는 추가 발표가 있자 이제는 ‘20대가 아이가 없기 때문’에 무책임한 선택을 한 것이라며 말을 바꿨다. 이들에게 20대는, 아니 모든 시민의 의견은 자기 처지에 따른 ‘이기적 계산’으로만 취급된다. 의견의 시민성이 박탈되는 지점이다.



입체적 논의를 납작하게 만드는 것도 문제다. 시민대표단은 ‘더 받고 더 내는’ 연금개혁과 더불어 ‘국가 지급 보장’, ‘사전적 국고 투입’에도 압도적 지지를 표했다. 미래세대 소득보장과 재정안정을 위해 가입자 추가 부담과 더불어 국가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한 것이다. 국민 절반이 노인이 되는 시대가 다가오고 여전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의 노인빈곤율을 기록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부에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하는 건 지극히 상식적이다. 하지만 재정안정 전문가들은 이런 국민의 의사를 수용하지 않는다. 여전히 국고 지원이 없다는 전제로 산정한 ‘어마무시’한 보험료율을 들이밀며 시민의 선택을 어리석은 선택으로 치부한다.



이 모든 사달에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공론화위원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기금 고갈 공포’를 조장하고 일방적으로 재정안정론의 입장만을 대변해왔던 일부 언론들은 공론화 결과가 발표되자마자 동료 시민의 의견을 부정하는 정치인과 전문가들의 말들을 퍼 나르기 시작했다. 공론화위원회 최종 결과 보고서인 ‘2024년 연금개혁 공론화 조사 결과 보고’에 따르면 시민대표단이 숙의 과정에서 도움이 되는 정보로 언론 보도에 가장 낮은 평점을 주었다는 점은 언론인들이 다시 한번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다.



가장 큰 책임은 역시 대통령과 정부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대통령 직속 연금개혁위원회 설치’를 공약으로 제시했고, 연금개혁을 3대 개혁의 하나로 추진하겠다고 선언해왔다. 하지만 집권 뒤 ‘대통령 직속’은 슬그머니 사라졌고, 이내 국회 연금특위로 대체되었다. 지난해 말 정부는 연금개혁에 대한 구체적 내용이 포함되지 않은 ‘맹탕’ 제5차 국민연금 종합운영계획(안)을 제출하면서, 공론화 과정을 통해 의견을 수렴해 반영하겠다 했다. 그런데 정작 공론 결과가 나오자 보건복지부는 부정적 반응부터 보였다. 대통령은 공론화 결과를 존중해 연금개혁 입법을 처리하자는 야당 대표의 제안에, 다음 국회로 넘기자고 답했다. 대통령과 집권여당이 공론화위원회에서 확인된 국민 의견을 외면하고 연금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제 임기가 한달도 남지 않은 21대 국회지만, 이번 국회에서 공론조사로 확인된 민심을 반영한 국민연금 개혁이 반드시 처리돼야 한다. 유례없는 초고령화 사회를 앞두고 40%에 달하는 압도적인 노인빈곤율을 기록하고 있는 부끄러운 현실에서, 연금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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