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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당신의 아버지, 어머니는 어떤 분이신지요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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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어버이날인 지난해 5월8일 오전 서울 탑골공원에서 한 어르신이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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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윤 | 소설가



기나긴 겨울 동안, 하마터면 봄빛을 잊을 뻔했다. 어디에 그런 빛이 숨어 있었을까. 온 세상이 오색의 찬란한 봄빛으로 뒤덮였다. 이럴 때는 이상하게도 때로 눈이 시리고, 때로 코끝이 시리다. 아마도 아버지가 떠나실 때도 이토록 신록이 푸르고 봄꽃이 만발하였던 까닭일 것이다.



아침의 일이다. 분주한 출근길에, 아버지를 무척 닮은 어르신을 뵈었다. 간혹 아버지의 산책을 우연히 마주할 때가 있었고, 그럴 때면 나는 “아빠!”하고 달려가 팔짱을 끼곤 했다. 깜짝 놀라시며 반겨주시던 모습이 바로 지금인 듯 생생하다.



아버지가 떠나시고 여러 번의 계절이 지났다. 시간이 흐르며 애끊는 슬픔과 상실은 잔잔해졌으나, 사무치는 그리움은 날로 더하는 듯하다.



아버지는 평생 일기를 쓰셨다. 50여권의 일기장 속엔 1960년대의 풍경과 비 오는 날의 흙내음, 자욱한 안개까지도 생생하다. 말하자면 20대부터 70대까지의 대하소설인 셈이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한때 촉망받는 수재였다. 그러나 그 시대의 많은 청년이 그러했듯이, 꿈만을 좇기엔 환경이 녹록지 않았다. 그는 교육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마음에 품었던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꽤 오래 방황하게 된다. 그가 나의 아버지가 되고, 내 아이들의 할아버지가 되는 과정은 야망, 혼란, 갈등, 체념, 평화에 이르는 소박하고도 절박한 한 인간의 일대기다. 이는 물론 누구에게나 있을 보통의 삶의 이야기로, 아마도 내가 걷는 길, 또 내 자녀들이 걸어갈 길 또한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때로 빛나고 때로 초라한 그 사소한 순간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와 닿는 것은, 그 대상이 내게 유일무이한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철학자 에리히 프롬은 “대상이 지닌 실존의 핵심에 도달했을 때 비로소 사랑이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는 어버이에 대해 얼마나 많은 것을 알고 있을까. 아버지, 어머니가 순수한 어린 시절을 지나, 세상의 상처로부터 분투하며 삶을 일구고, 때로 실수하고 실패하면서도 끝끝내 포기하지 않았음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그도, 그녀도, 언제나 사랑받고 싶던 어린아이임을, 꿈을 품었던 청년임을, 비록 실패로 끝난 적이 더 많았더라도 최선을 다해 달려온 인간임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그러하기에 내게 아버지는, 어머니는 완전하다. 불완전함을 발견했을 때조차 완전하다. 그것은 내가 자녀이자 한 명의 친구로서, 그들의 내면에 있는 고뇌와 실패, 야망과 열정 등 실존의 핵심에 닿은 바 있기 때문이다.



내게서 좋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모두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왔다. 내게서 탓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오롯이 나의 탓이다. 이 짧은 두 문장을 세상의 모든 어버이에게 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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