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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反戰시위 확산, ‘바이든의 베트남’ 될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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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 자제” 성명… 軍투입엔 선그어

美 ‘이스라엘 찬반’ 진영 모두 냉담

동아일보

반전시위 참가 학생들 체포 2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경찰이 중동전쟁 반대 시위에 참여한 학생을 체포하고 있다. 경찰은 이날 오전에만 친팔레스타인 시위 캠프의 농성 텐트촌을 해체하며 학생 100여 명을 체포했다. 로스앤젤레스=신화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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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물론이고 유럽 대학가로도 중동전쟁 반대 시위가 번지는 가운데,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항의할 권리는 있지만 폭력은 안 된다”며 시위 자제를 촉구했다. 일주일가량 고심 끝에 나온 긴급 성명이지만 찬반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2일(현지 시간) 백악관에서 예정에 없던 연설을 갖고 “누구도 혼란을 야기할 권리는 없다”며 “질서가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뉴욕 컬럼비아대에 이어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등에서 충돌 사태가 이어지자, 지난달 24일 “반(反)유대주의 시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밝힌 지 8일 만에 공식 반응을 내놓았다. AP통신 등에 따르면 2일 기준 미 전역에선 대학생 약 2200명이 경찰에 체포되거나 구금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 뒤 ‘시위가 중동 정책에 영향을 주느냐’는 질문에 “아니다”라며 이스라엘 지원 중단 요구를 일축했다. 야당 공화당이 요구하는 주(州)방위군 투입 역시 거부했다. 더글러브 브링클리 라이스대 교수는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에 “중도적 접근법을 취했지만 양측의 분노를 달래는 데는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고 평했다.

이번 사태가 바이든 대통령의 대선 가도에 타격을 입히는 트리거(trigger·방아쇠)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무소속·버몬트)은 “사람들은 이번 사태가 ‘바이든의 베트남(Biden’s Vietnam)’이 될 수 있다고 여긴다”고 말했다. 1968년 린든 존슨 당시 대통령은 베트남전 반대 여론에 휩쓸려 결국 재선 출마를 포기했다.

바이든 “폭력시위 안돼, 표현의 자유는 수호” 애매한 중립 역풍

美대학가 反이스라엘 시위 확산
침묵 8일만에 예정에 없던 연설… 시위 청년-유대계 한쪽 손 안들어줘
마오 어록 등장 등 시위현장 격화… 공화당 “대통령 실종 상태” 공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연설은 ‘담장 위에 앉는(fence sitting·중립적)’ 결정이지만, 청년들이 투표하지 않으면 그의 재선 희망은 파멸을 맞을 수도 있다.”(미 CNN방송)

미 대학가에서 중동전쟁 반대 시위가 거세지고 있지만, 바이든 대통령의 선택 폭은 넓지 않았다. 친(親)팔레스타인 성향인 젊은층도, 미 주류 사회에 영향력이 큰 유대계도 포기할 수 없는 그의 고뇌는 8일의 장고 끝에 2일(현지 시간) 내놓은 연설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법치주의와 표현의 자유는 함께 지켜져야 한다”며 어느 쪽 손도 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양측 모두에게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 야당 공화당은 즉각 “대통령 실종(MIA·Missing in Action) 상태”라며 공세를 펼쳤다. 민주당 측에서도 애매한 중립은 정치적 고립을 자초한다는 우려가 나왔다.

게다가 시위는 대통령의 연설에도 가라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일부 과격파가 중국 초대 주석 마오쩌둥(毛澤東)의 혁명어록을 캠퍼스에 공개하는 등 시위가 급진화될 양상을 보이고 있다. 몇몇 대학에선 성조기 대신 팔레스타인 국기를 게양하려는 학생들과 경찰이 물리적 충돌을 벌이기도 했다.

● 대학가에 마오쩌둥 혁명어록 등장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Political power comes from the barrel of a gun).’

뉴욕경찰(NYPD)가 1일 공개한 컬럼비아대 진압 영상엔 이례적인 글귀가 논란이 됐다. 해밀턴홀을 점거한 시위대가 칠판에 써 놓은 ‘경찰 대응 계획’에 마오쩌둥 어록집 문장들이 담긴 것.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현장에선 침낭과 요리기구 등 장기 농성을 준비한 흔적도 발견됐다.

수도 워싱턴 중심에 있는 조지워싱턴대도 좌경화된 분위기가 감돌았다. 유니버시티야드(University Yard)를 장악한 시위대는 2일 오후 1시경 게양대에 걸린 성조기를 내리고 팔레스타인 국기를 걸며 “단결된 민중은 패배하지 않는다”는 혁명 구호를 외쳤다.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 동상에 팔레스타인 국기를 두르고 낙서를 해놓기도 했다.

성조기 교체는 뉴욕시립대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미시시피대 등 미 전역에서 벌어졌다. 노스캐롤라이나대 채플힐 캠퍼스에선 시위대가 팔레스타인 국기를 내걸려 하자 일부 학생들이 성조기를 지키려고 막아서는 일도 벌어졌다.

상황이 이렇자 대학생 시위에 ‘외부 선동가’들이 가담해 시위 성격을 변질시켰단 지적도 나왔다. 에릭 애덤스 뉴욕시장은 기자회견에서 “컬럼비아대 등에서 체포된 이들 중 40%가량이 학생이 아니었다”며 “청년들을 급진화시키려는 움직임이 있다”고 말했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도 소셜미디어에 “그들은 반미주의자들”이라며 비난했다.

● 사면초가에 몰린 바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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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대통령의 2일 대국민 연설은 이날 백악관 일정엔 들어있지 않았다. 지난달 24일 “반유대주의 시위는 안 된다”고 언급한 뒤 침묵을 지켜왔지만, 더 이상 입장 표명을 미룰 수 없는 긴급 상황이란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연설에서 “재산 파괴는 평화 시위가 아니라 법 위배”라며 “미국 어느 캠퍼스도 반유대주의 폭력과 위협이 있어선 안 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대통령으로서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고 강인하게 법치를 옹호하겠다”며 중립을 지키려 애썼다.

공화당은 강경한 정부 대응을 주문하며 바이든 대통령을 성토했다. 존슨 의장은 이날 인터넷매체 액시오스와의 인터뷰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오랫동안 실종된 상태였다”며 “시위 대응에 소극적인 대학은 연방 자금 지원을 줄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시위가 장기화될수록 바이든 대통령의 부담 역시 커진다. 질서와 안정을 원하는 유권자들의 표심이 현 정부에서 멀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NYT는 “역사적 봉기가 있은 뒤엔 언제나 보수의 시대가 찾아왔다”고 전했다.

NYT에 따르면 1968년 리처드 닉슨 당시 공화당 후보는 ‘잊혀진 미국인, 비시위자’란 슬로건으로 민심을 공략해 대권 승리를 이뤘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은 1966년 “베트남전 반전 시위 혼란을 청소하겠다”는 공약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돼 정치 기반을 다졌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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