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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8 (토)

주삿바늘 찔러 아기 사망, 진단서엔 ‘병사’…대법 “유죄 판단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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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위진단서 작성 혐의

1·2심 유죄 인정…벌금형

대법, “유죄 판단 잘못”

헤럴드경제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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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안세연 기자] 골수 채취 과정에서 주삿바늘이 깊게 찔려 숨진 영아의 사망진단서를 ‘병사’라고 허위 작성한 혐의를 받은 의사 2명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 취지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부검 이전과 이후에 밝혀진 사망 원인이 다르다고 해서 곧바로 허위진단서 작성의 고의를 인정할 순 없다”고 판시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1부(주심 대법관 오경미)는 허위진단서 작성,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를 받은 대학병원 교수 A(69)씨, 전공의 B(36)씨에 대해 이같이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들에게 벌금형을 선고한 원심(2심)엔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다시 판단하도록 사건을 울산지방법원에 돌려보냈다.

사고는 2015년 10월, 생후 6개월 된 영아의 골수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당시 3년차 전공의였던 B씨는 골수 채취를 시도했으나 수차례 실패했다. 이를 이어받은 2년차 전공의 C씨가 골수를 채취했지만 영아는 산소 포화도가 떨어지는 증세를 보이다 결국 숨졌다. 사망 당시엔 정확한 사인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부검 결과, C씨가 주삿바늘을 깊게 찔러 영아의 동맥이 파열돼 쇼크로 숨진 게 밝혀졌다.

담당 교수였던 A씨와 전공의 B씨는 영아의 사망진단서를 허위 작성한 혐의를 받았다. 이들은 영아의 사망 종류를 ‘병사’로, 직접 사인을 ‘호흡 정지’ 등으로 기재했다. 검찰은 이들이 사망 종류를 ‘외인사(자연사가 앙닌 다른 모든 죽음)’로 또는 ‘기타 및 불상’으로 적었어야 했다며 재판에 넘겼다.

재판 과정에서 이들은 “피해자의 사망원인이 수면제의 부작용 때문이라 여겼다”며 “동맥파열로 인한 출혈 때문이라는 점을 알지 못했다”는 등 혐의를 부인했다. 또한 “유족이 진료 기록을 복사하고, 피해자 부검도 예상되는 등 법적 분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사망진단서를 허위로 작성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1심은 허위진단서 작성 혐의를 유죄로 인정했다. 1심을 맡은 울산지법 형사2단독 유정우 판사는 2020년 0월, A씨에게 벌금 500만원을, B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A씨 등이 의사로서 피해자가 지병으로 인해 사망한 것으로 볼 수 없음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었다”며 “사망 원인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망진단서에 사망 원인을 ‘알 수 없음’으로, 사망 종류는 ‘외인사’ 혹은 ‘기타’로 작성했어야 했는데 진실과 다르게 작성했다”고 밝혔다.

이어 “골수검사 시술 도중 피해자가 사망한 것이 명백한 이상 ‘병사’가 아님이 명백함에도 사망진단서에 사실과 다른 내용을 기재함으로써 죄질이 결코 가볍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들의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A씨 및 B씨의 과실과 피해자의 사망 사이에 인과관계가 명확하게 존재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2심의 판단도 같았다. 2심을 맡은 울산지법 1형사부(부장 이우철)는 2021년 10월, “1심 판단은 정당하다”며 양측의 항소를 기각했다.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원심(2심)이 허위진단서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것은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의사 등이 사망진단서를 작성할 당시 부검을 통하지 않고 사망의 정확한 의학적 원인을 파악하는 것엔 한계가 있다”며 “허위인식이 있었는지 여부는 임상의학 분야에서 실천되고 있는 의료수준에 비췄을 때 환자의 구체적인 증상 및 상태변화, 진료경과 등을 종합해 판단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이어 “여러 사정을 종합했을 때 A씨 등은 영아의 산소포화도가 급격하게 저하되자 진정제 투여 부작용에 관한 치료를 우선적으로 시행했는데, 이 과정에서 영아가 사망하자 진정제 투여에 따른 부작용으로 호흡곤란이 발생해 사망한 것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기재된 사망원인이 부검결과 확인된 사망원인과 일치하지 않지만 이들에게 허위진단서 작성에 대한 확정된 또는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는 점에 대한 증명은 부족하다”며 “부검 이전과 이후에 밝혀진 사망 원인이 다르다고 해서 곧바로 허위진단서 작성의 고의가 있다고 판단할 순 없다”고 결론 내렸다.

한편 영아의 동맥을 직접 파열시킨 다른 전공의 C씨는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notstrong@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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