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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6 (목)

“이공계 학부 수업, 대학원 수준으로 높이고 무전공 선발 확대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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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상 경희대 총장 인터뷰

의대 증원 땐 이공계열 우려 커져… 대학에서 먼저 교육의 질 높여야

훌륭한 교수 선발 환경 마련 위해 정부 차원의 혁신적 지원책 필요

내년 정원의 10% 무전공 선발… 전담기구 만들어 선택 도울 것

동아일보

김진상 경희대 제17대 총장은 지난달 24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총장실에서 진행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학생에게 ‘열린 가능성의 공간’이 될 수 있도록 학과 간 장벽을 허물고 융복합 교육을 하겠다”며 “정부는 우수한 교수가 학교로 유입될 수 있도록 지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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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분야에서 한국과 경쟁하는 대만에서 학회가 열릴 때 학생들을 만나 보니 전자공학과 등 공대에 대한 선호가 높았습니다. 특단의 이공계 정부 지원책이 없으면 경희대뿐 아니라 한국 경제 전체에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올 2월 취임한 김진상 경희대 총장은 전자공학과에서 반도체 분야를 가르치다 총장이 됐다. 경희대 최초의 공대 출신 총장이다. 김 총장은 지난달 24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 본관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를 갖고 의대 교육 파행에 대한 입장과 이공계 인재 양성에 대한 생각 등을 밝혔다.

―지난달 초 의대 수업을 재개했는데 수업은 잘되나.

“의대는 3월 한 차례 개강한 뒤 휴강했다가 4월 1일 수업을 재개했다. 학생 참여를 최대한 유도하기 위해 지정된 기간 비대면(온라인) 강의를 들으면 출석을 인정해 주고 있다. 대학이 교육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학생들이 계속 수업을 거부하면 유급될 수 있나.

“계속 논의 중이다. 방학 동안 보강을 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서울 지역 의대는 증원이 안 됐는데 왜 수업을 거부하느냐는 목소리도 있다. 하지만 경희대 의대 졸업생은 전국으로 퍼지니 전체적인 의료계 이슈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의대생들은 급격한 증원으로 교육의 질이 저하될 것을 우려하는데 이런 우려는 존중돼야 한다. 현 상황은 외부적 요인으로 해결될 수 있겠지만 대학은 학생에게 교육을 포기하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증원으로 의대 쏠림 현상이 심화되면 이공계 인재 양성이 어려워진다.

“장기적으로 의대 증원 후 초과 수요가 해소되고 균형 잡힌 기대 수익이 현실화되면 의대 쏠림 현상이 완화될 것이란 의견이 많다. 그렇게 되면 이공계에도 우수한 학생이 진학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반도체 전공 교수로서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증원된 2000명은 최상위권 대학 3곳의 이공계열 전체 정원에 해당한다. 지금까지 이공계에 오던 학생과 내년도 이후에 들어오는 학생은 수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대학 차원에서 어떻게 풀어야 하나.

“대학에선 먼저 학부 교육을 대학원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융합적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이론 및 기술 교육에 힘쓰고 교육 과정도 개발해야 한다. 정부의 혁신적 이공계 지원책도 필요하다. 한국도 지금의 대만처럼 전자공학과나 컴퓨터공학과를 선호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들 학과 졸업생들이 굴지의 기업을 만들고 수출로 경제에 이바지했다. 정부 지원의 핵심은 훌륭한 이공계 교수를 선발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다. 우수한 교수가 학교로 유입될 수 있게 해주는 다양한 지원책이 필요하다.”

―경희대 한의대는 의대 증원 영향을 안 받나.

“의대 증원으로 다른 학문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있다. 다만 경희대 한의대는 역량이 최고라 영향을 덜 받을 것으로 본다. 우리 한의대는 동양의학과 서양의학을 접목하는 제3의학을 만들기 위해 계속 도전해 왔다. 위기라기보다 의학과 한의학을 넘나드는 융합형 인재를 키워낼 기회라고 보고 있다.”

―내년도 무전공 선발을 얼마나 할 건가.

“무전공 선발은 제가 설정한 도전 과제 중 하나인 ‘다학제·다기관·다국가 간 교육 및 연구’의 일환이다. 경희대는 2009년 전공이 없는 자율전공학부를 설립했다. 내년도에 서울캠퍼스는 이를 확대해 165명을, 용인 국제캠퍼스는 그와 별도로 241명을 무전공으로 선발한다. 무전공 선발 인원은 총 406명으로 전체 정원의 10%에 해당한다. 향후 무전공 선발을 얼마나 확대할지는 내부 교육혁신위원회에서 7월 말에 결정할 것이다.”

―경희대는 2012년 분교와 본교가 통합됐다. 무전공이 이원화 캠퍼스에 맞나.

“경희대 서울캠퍼스는 인문사회 중심, 국제캠퍼스는 실용공학 중심이다. 무전공 선발의 취지대로라면 서울캠퍼스로 들어온 학생도 공학 과목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원화 캠퍼스 대학은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무전공 모집을 캠퍼스별로 해야 하고, 캠퍼스를 넘어선 전공 선택도 어렵다. 경희대에 입학한 이상 캠퍼스의 지리적 위치와 상관없이 자유롭게 전공을 선택할 수 있도록 제도가 개선되길 기대한다. 향후 교육부에도 요구할 계획이다.”

―무전공 입학생에게 전공 탐색 기회를 어떻게 제공할 건가.

“무전공 신입생을 전담할 기구를 구상하고 있다. 전공 탐색 및 상담 프로그램, 역량 개발 프로그램 등도 수립 중이다. 전공 탐색 과정에서 융합 교육이 저절로 이뤄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호텔 경영을 전공하기 위해 철학, 경영, 데이터 사이언스 등 여러 수업을 들을 수 있다. 학생들이 충분한 시간을 갖고 체계적으로 전공 탐색을 할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제공할 생각이다. 그러면 특정 전공 편중도 적어질 것이다.”

―오랜 등록금 동결로 대학 재정이 어렵다.

“경희대는 인문계 한 학기 등록금이 314만7000원이다. 국내 사립대 중 가장 낮고, 선진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오랜 등록금 동결로 연구실험 장비와 연구 시설 등 교육환경이 점점 낙후되고 있다. 이는 구성원 사기에도 영향을 미친다. 우수한 교수가 영입돼야 우수한 인력이 배출되고 산업이 발전할 수 있다. 비판적 사고, 창의력, 소통 능력을 갖춘 인재를 키우려면 교육 환경과 교수법 개발에 투자해야 한다. 국민들도 등록금 문제를 국가 경쟁력 차원에서 봐줬으면 좋겠다.”

―취임사에서 대학 재정을 다변화하겠다고 했다.

“대학이 미래를 향해 크게 도약하려면 지속 가능한 재정 구조를 확립해야 한다. 또 등록금 위주의 재정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대학인 만큼 교육과 연구, 공공협력을 통해 사회 공헌을 하면서 지식의 사업화를 추진하겠다. 전환 시대에 모든 게 빠르게 변하면서 현재 있는 직업도 50% 이상이 사라질 것이다. 대학도 상아탑에서 벗어나 재직자, 은퇴자 교육까지 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재정을 확보해 디지털 전환과 수준 높은 학부 교육에 재투자할 것이다.”

최예나 기자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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