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11 (토)

절차 어긴 북한 주민 196억 상속소송, 대법 “로펌 위임계약은 유효, 보수 지급해야”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상속재산 196억원에 대한 성공보수 약정은 ‘무효’

북한 주민이 국내(남한)에서 사망한 부친이 남긴 상속 재산을 다툰 사건을 맡았지만 보수를 한 푼도 받지 못한 변호사에게 수임 계약에 따른 보수 지급이 가능하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법에 따른 재산관리인을 통하지 않고 변호사를 선임해 맺은 성공보수 약정은 무효이지만, 사건 수임 계약 자체는 유효하다는 취지다.

조선일보

서울 서초구 대법원 모습. /뉴스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대법원 1부(주심 서경환 대법관)는 A 법무법인이 북한 주민 안모씨 남매 측을 상대로 제기한 보수 약정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28일 밝혔다.

안씨 남매의 부친은 남한에서 터를 잡은 재력가로 2012년 3월 사망했다. 안씨 남매는 북에서 부친이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부친의 재산을 상속 받기 위해 나서기로 했다. 북한 주민도 남한 내 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인정하는 남북가족특례법은 2012년 시행됐다.

안씨 남매는 브로커를 통해 2016년 초 A 법무법인과 사건 수임 계약을 맺고 상속 지분 30%를 성공 보수로 정했다. 이후 A 법무법인은 2016년 4월 안씨 남매를 대리해 서울가정법원에 친생자 관계 존재 확인 소송 등을 냈다.

A 법무법인의 업무는 성공적이었다. 항소심까지 거쳐 안씨 남매가 2018년 8월 사망한 부친의 친생자라는 판결을 받았다. 한국에서 상속인들 간 진행됐던 상속 재산 분할 심판에서도 나머지 상속인들과 재판상 화해를 끌어냈다. 안씨 남매는 2019년 부친이 남긴 경기 남양주 토지(93억8900만원), 서울 중구 소재 건물(8억4200만원) 등 총 196억 2400만원 상당의 재산을 상속 받았다.

그런데 안씨 남매는 남북가족특례법 규정을 이유로 변호사비를 일절 주지 않았다. 이 법에는 북한 주민이 남한 내 재산에 관한 권리를 취득한 경우 재산관리인을 선임해야 하고, 재산관리인을 통하지 않은 상속 재산 관련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정하고 있다.

A 법무법인은 성공 보수 약정에 따라 “상속분의 30%에 상응하는 58억87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소송을 냈다. 소송에서 안씨 형제 측은 “이 사건 보수 약정은 북한 주민인 피고들이 재산관리인을 통하지 않고 상속재산 등에 관해 한 법률행위이므로 무효”라고 맞섰다.

A 법무법인은 1·2심에서 모두 패소했다. 1심은 ‘법에 정해진 내용에 따라 보수 약정은 무효”라고 판단했다. 이어진 2심에서 A 법무법인은 “보수약정이 남북가족특례법 위반으로 무효라 해도 위임약정은 유효하다”고 주장했지만, 2심도 “위임약정과 보수약정은 그 전체가 하나의 계약 관계”라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이 사건의 결론은 대법원에서 일부 뒤집혔다. 대법원은 1·2심과 같이 성공보수 약정은 재산관리인을 통하지 않았으므로 무효가 맞는다고 보면서도, 안씨 남매와 A 법무법인 간 변호사 수임 계약 자체는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보수 약정이 무효라고 해서 곧바로 이 사건 위임 약정이 무상의 위임 계약이 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며 “단지 보수 지급 및 액수에 관해 명시적인 약정이 없는 경우에 해당할 뿐”이라고 했다. 안씨 남매와 A 법무법인 사이에 성공보수 약정이 없었다고 해도 의뢰인과 변호사간 업무 위임에 따른 일정한 보수를 지급하는 것은 동의했을 것으로 보는 게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기존 판례도 변호사에 사건을 위임할 때 계약 내용에 무보수로 한다는 약정 등 특별한 사정이 없을 경우 일정한 보수를 지급하는 묵시적 약정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허욱 기자]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