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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2 (일)

미·러 위성, ‘깻잎 한 장 차이’ 스쳤다···가까스로 피한 우주 파편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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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미·러 위성 10m 이내 ‘초근접’

충돌했다면 파편 다량 생겼을 가능성

우주선·다른 위성 피해…우주비행사 위협

스타링크 위성 늘어나며 충돌 가능성 증가

우주 관련 협약 있지만 피해 구제책 미흡

경향신문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운영하는 지구 대기권 관측 위성 ‘타임드’가 고도 약 600㎞에서 임무 수행 중인 상상도. 지난 2월 러시아 위성과 10m이내로 초근접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NASA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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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상공 600㎞, 공학자인 라이언 스톤(샌드라 불럭 분)과 베테랑 우주비행사인 맷 코왈스키(조지 클루니 분)는 허블우주망원경을 수리하고 있다.

둔한 우주복 탓에 부품 교체에 진땀을 빼고 있지만, 무중력 공간이 주는 신기함과 발 아래 푸른 지구의 아름다움은 이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사한다.

그렇게 한참을 우주에서 시간을 보내던 그때, 지상 관제소에서 무전이 다급히 날아든다. 부서진 러시아 인공위성에서 튀어나온 수많은 파편이 이들의 작업 공간을 곧 덮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두 사람은 신속히 우주선으로 복귀해 지구로 귀환하려고 애쓰지만, 파편의 이동 속도는 너무 빨랐다. 두 사람을 제외한 모든 동료들이 파편에 직접 맞거나 탑승 중이던 우주선이 파괴되면서 사망한다. 미국 공상과학(SF) 영화 <그래비티> 도입부다.

이 장면은 상상이다. 영화에서처럼 수많은 위성 파편이 지구 궤도를 휩쓸면서 대규모 인적·물적 피해를 일으킨 적은 없다.

그런데 최근 상황이 달라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 2월28일 미국과 러시아 인공위성이 서로 충돌해 파편을 다량 만들 뻔한 일이 발생했다. 최근 정밀 조사를 해보니 두 위성 간 거리는 불과 약 10m였다. 우주공학적인 관점에서는 ‘깻잎 한 장 차이’만큼 가까워졌다가 가까스로 충돌을 면한 셈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어쩌다 생긴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앞으로는 아예 충돌이 일상화돼 파편이 지속적으로 양산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파편 속도 ‘총탄 8배’


이달 초 미국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열린 우주 관련 국제 행사에서 펨 멜로이 미국 항공우주국(NASA) 부국장은 지난 2월28일 지구 궤도에서 대형 충돌사고가 벌어질 뻔한 일에 관해 주목되는 언급을 했다.

그는 “미국과 러시아 위성이 약 10m 거리까지 접근했다”며 “충격적인 일이었다”고 말했다. 지난 2월 충돌 직후 나온 초기 분석에서는 두 위성 간 거리가 20m로 알려져 있었다. 하지만 NASA가 추가 분석해 보니 거리가 절반 줄어든 약 10m에 불과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진 것이다.

지구 궤도에서는 위성 간 거리가 수㎞만 돼도 충돌 경계 대상이다. 10m는 완전한 비상 상황을 뜻한다.

충돌할 뻔한 위성 중 하나는 NASA가 운영했는데, 이름은 ‘타임드’였다. 지구 대기권 관측 용도이고, 2001년 발사됐다. 중량 660㎏으로, 중형급 위성이다.

또 다른 위성은 러시아의 ‘코스모스 2221’이다. 첩보 용도이며 1992년 발사됐다. 중량은 2000㎏으로, 대형급 위성이다. 두 위성은 모두 약 600㎞ 고도를 돌고 있었다.

두 위성 모두 스스로 궤도를 바꿀 추력 발생 기능은 없었다. 충돌을 면한 것은 운이 좋았기 때문이다. 두 위성이 부딪쳤다면 각자 동체에서 튀어나온 파편이 지구 궤도를 대략 시속 2만8000㎞, 소총탄의 약 8배 속도로 돌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두 위성 간 충돌로 생긴 파편이 다른 위성을 때려 또 다른 파편을 연쇄적으로 만들었을 가능성도 크다. 현재 지구 궤도를 떠다니는 10㎝ 이상 우주 파편은 3만4000개인데, 이 숫자가 단번에 수백 개 또는 수천 개 더 늘어날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런 파편은 <그래비티>처럼 위성이나 우주선, 우주비행사를 공격한다.

위성 폭증 전망…법적 구제책 미흡


2009년에는 위성 간 실제 충돌도 있었다. 미국 민간 통신위성과 러시아 군사 위성이 부딪쳐 두 위성 모두 대파됐다. 이때 파편이 약 2000개 생겼다. 그 뒤에는 뚜렷한 대규모 충돌 사례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앞으로도 지구 궤도에서 아슬아슬한 평화가 지속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국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스타링크’ 사업 때문이다. 스타링크는 기지국 기능을 하는 위성을 다수 쏘아 올려 바다에서든 사막에서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인터넷을 쓸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2019년 첫 발사 뒤 스타링크 사업용 위성은 약 6000기가 지구 궤도로 올라갔다. 현재 지구를 도는 전체 위성 1만1500기의 절반이다. 스페이스X는 2027년까지 스타링크 사업용 위성을 1만2000여기까지 늘릴 계획이다. 인류가 한 번도 경험한 적 없을 만큼 위성 숫자가 많아진다는 뜻이다.

스타링크 위성에는 자동 충돌회피 기능이 달려 있다. 하지만 위성 숫자가 너무 많아지면서 충돌을 100% 피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과학계에서는 나온다.

충돌 사고가 빈번해졌을 때 이를 처리할 법적 장치도 충분치 않다. 예를 들어 A와 B국가 위성이 충돌했을 때 생긴 파편이 지구 궤도를 돌다가 C국가 위성을 때려 손상을 입혔다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을지가 애매하다.

김한택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우주법 전문)는 “우주물체에 관련한 다양한 국제협약이 있기는 하다”며 “하지만 자국 위성이 정확히 어느 국가에서 나온 위성 파편 때문에 망가졌는지 증명할 방법이 마땅치 않을 것이기 때문에 배상을 받는 일도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정호 기자 r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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