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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0 (금)

민희진 욕설·오열에 가려졌다…'뉴진스 카피' 논란 중요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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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브 막장 내분 사태



중앙일보

컨셉트 카피 논란으로 떠들썩한 걸그룹 뉴진스와 아일릿(아래 사진). 뉴진스는 5월말 국내 컴백 등을 예정대로 진행할 예정이다.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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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진스 맘’ 민희진 표 막장드라마가 장안에 화제다. 경영권 탈취 의혹으로 하이브의 감사를 받던 어도어 민희진 대표가 25일 욕설과 오열로 점철된 분노폭발 기자회견을 열어 세상을 놀라게 했다.

막장드라마의 발단은 최근 데뷔한 걸그룹 아일릿이 묘하게 뉴진스를 카피했다는 주장에서 비롯됐다. 뉴진스는 K팝 대표주자 하이브가 SM엔터테인먼트에서 활약하던 비주얼 디렉터 민희진을 영입해 만든 레이블 어도어가 2022년 데뷔시킨 걸그룹으로, ‘BTS 여동생 그룹’으로 통한다. 남성들의 판타지에 기대어 ‘섹시’와 ‘청순’을 오가던 걸그룹 클리셰를 뒤집은 독보적인 컨셉트로 탄생과 동시에 ‘또래들의 워너비’가 됐다.

그런데 지난 3월 하이브의 또 다른 레이블 빌리프랩에서 방시혁 의장이 직접 프로듀스한 아일릿을 두고 민 대표가 “뉴진스의 컨셉트와 마케팅 방식을 그대로 베꼈다”며 ‘내부 고발’ 형식으로 항의한 것. 이에 하이브는 경영권 탈취 의혹을 제기, 민 대표 등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대표직 사임도 요구받은 민 대표는 “뉴진스의 문화적 성과를 지키기 위한 정당한 항의”라고 반발했다.

복잡해 보이는 막장드라마 플롯의 핵심은 ‘뉴진스의 문화적 오리지낼리티를 아일릿이 침해했느냐’의 공방이다. 민 대표는 아일릿 뿐 아니라 보이그룹 투어스·라이즈까지 ‘뉴진스 아류그룹’이라며 자신의 오리지낼리티를 주장했고, ‘컨셉트 저작권’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다. 이에 대한 논란은 분분하다. 뉴진스도 데뷔초 90년대 일본 걸그룹 ‘스피드’와 유사하다는 지적이 있었고, “블랙핑크 이후 비슷한 걸그룹이 쏟아져 나왔는데 그럼 테디는 뭐냐” “시대의 아이콘이 됐으니 아류의 등장은 당연하다” “민희진의 자의식 과잉”이라는 댓글도 많다.

그런데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르다. 음악시장에서는 ‘썸띵 뉴’, 즉 새로운 것이 절대적이기에 아이디어와 컨셉트 자체가 존중받아야 한다는 것.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아일릿이 뉴진스의 개념을 카피했다는걸 누구나 인정한다면 민희진도 설득력 있다”면서, 욕설 기자회견을 두고도 “우리나라에서 욕설까지 해가며 자신만만하게 자기 메시지를 전한 사람이 있었나. 그런 배짱으로 만든 게 뉴진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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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셉트 카피 논란으로 떠들썩한 걸그룹 뉴진스(위 사진)와 아일릿.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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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에선 이 사태를 아이디어 도용에 대한 인식 개선의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문화평론가로 활동하는 정지우 변호사는 “아이디어가 저작권 보호 대상은 아니지만 컨셉트가 표현된 디자인이나 형태, 색감을 구체적으로 따라하면 저작권 침해라는 접근도 가능하다”면서 “저작권 범위가 넓어지고 있고, 부정경쟁방지법 같은 다른 법으로 아이디어를 보호할 여지도 있다. 아이돌의 컨셉트가 고도의 노력과 창작성을 갖고 만들어진 것이라면 법형식만 따르기보다 폭넓게 보호할 방법을 찾는 게 현대 문화산업의 의무”라고 말했다.

하이브가 매출 2조원을 달성하며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등극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꼽혀온 국내외 멀티레이블 체제에 대한 회의론도 나온다. 절대적인 구심점 없이 한지붕 아래서 매출 경쟁을 하다가 이런 사태가 터졌다는 것이다. 임진모 평론가는 “멀티레이블은 음악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다양성 확보 방식으로, SM이 멀티칼라로 먼저 가동해왔다”면서 “하이브는 다양성이 아니라 돈을 좇다보니 예술적 결핍을 자초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번 사태로 잠재돼 있던 K팝 위기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해 카카오와 SM엔터테인먼트 간 경영권 분쟁, 걸그룹 피프티피프티와 소속사 간의 분쟁까지 소개하며 이번 사태가 “K팝 산업을 강타한 여러 분쟁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K팝의 위기는 산업 과몰입으로 인한 예술성 후퇴의 결과일 수 있다. 임 평론가는 “최근 아일릿과 르세라핌의 라이브 논란으로 K팝이 산업적 크기만 생각했지 예술적 깊이를 추구하지 않은 게 만천하에 드러났다. 브리티시 인베이젼이나 헤비메탈이 성장할 때도 시장의 인정과 동시에 예술적 깊이가 있었다. 아무도 K팝의 예술성을 인정하지 않는 지금, 그나마 뉴진스는 나름의 자기 행보를 밟았기에 손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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