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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이수준의 부동산수첩] 분양가 상한제의 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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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트로신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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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로또청약에 대한 뉴스는 부동산 경기를 타지 않는다. 아파트에 당첨되자마자 주변시세에 비해 수억씩 이득을 보는 로또청약의 이유는 분양가 상한제 때문이다. 수요와 공급이 만나 자연스럽게 가격을 결정하는 것이 시장의 원리인데, 분양가 상한제는 가격을 시세보다 훨씬 낮추어 놓고 거래를 시작하게 된다. 물론 이는 새집을 싸게 팔면 집값이 내려가고 투기가 억제될 것이라는 의도이다.

가격이 시세보다 싸면 당연히 경쟁률이 치솟는다. 그래서 몰려드는 손님들 중 주택소유 여부, 부양가족 수 등을 따져서 누가 더 새집이 급한지 '선정'해야 한다. 경제적 형평성이 아닌 사회적 형평성으로만 보면 괜찮은 방법이다.

문제는 공급이다. 공급에 활약을 해줘야 할 건설사나 개발업자의 입장에서 분양가상한제는 큰 걸림돌이다. 어떤 제화든 공급자가 가격표를 내걸고 안 팔리면 스스로 가격을 낮추기 마련인데, 그 가격을 국가에서 정해버렸다. 생산자가 사업을 해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제한되면 사업 의지가 확 꺾이게 된다. 가격을 떠나서 원활한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게 된다.

가령 어느 해 마늘이 흉작이어서 가격이 폭등했다고 치자. 이 소식이 퍼지면 다른 작물을 농사짓는 농부들까지 앞다퉈 마늘을 심게 된다. 마늘의 생육 기간은 불과 수개윌이기 때문에 가격은 금세 안정된다. 공장에서 생산하는 다른 물건들도 그런 경우가 많다. 생산설비를 늘리고 인력의 고용과 양성이 쉬운 경우, 가격이 올라도 금방 다시 안정된다. 이러한 상품들을 경제용어로 '공급이 매우 탄력적'이라고 표현한다.

몇년 전 경기 북부 지역에 심각한 수해가 있었다. 당시 인근 소도시에 집집마다 막힌 하수구를 뚫는 배관공들이 호황을 맞았다. 평소 수리비용에 비해, 그해 물난리 직후 수리비가 많게는 다섯 배 까지 올랐다고 한다. 결국은 해당 지자체에서 칼을 빼 들었다. 일정 가격 이상을 받는 배관공들은 제보를 받아서 단속하기로 한 것이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까? 물론 배관공들이 생업을 멈추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들의 활약이 다급한 시기였음에도, 업체들의 처리 건수가 평소보다 그다지 늘지 않았고 작업 성과도 상당히 떨어졌다.

그때 만약 지자체에서 배관공의 수리비를 규제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배관 출장수리와 같은 품목은 '공급이 매우 탄력적'인 상품이다. 우리나라는 전국 어디라도 이동하는데 하루가 채 걸리지 않는다. 수리비가 평소의 다섯 배라는 소문이 전국에 퍼지면, 아마 상당히 먼 도시의 기술자들까지도 장비를 챙겨서 몰려왔을 것이고 자율 경쟁을 통해서 수리비도, 수해로 인한 다급한 상황도 곧 안정되었을 것이다.

아파트는 흔히 이러한 재화 중에서 공급이 가장 '비탄력적'이다. 배관공이나 마늘 농사처럼 가격이 올랐을 때 단기간에 공급을 늘릴 수가 없다는 것이다. 신규 택지를 개발하는 것은 물론이고 재개발, 재건축의 경우 조합설립, 행정업무에만 짧아도 수년이 걸리며, 공사가 완료되기까지 다시 수년이 걸린다.

지금 분양가 상한제를 실시하는 곳은 강남3구와 용산구이다. 어떤 면에서는 강남과 용산에 이미 집을 가진 '기득권' 세력들에게 분양가 상한제가 이 어려운 시기에 집값을 지지해주는 든든한 동력이 될 수도 있다. 이 사실을 상당 수 정치인들도 물론 알고 있을 것이다. 해당 지역들은 전통적인 보수정당의 텃밭이기도 한데 분양가 상한제에 대해서만큼은 극렬히 저항하지 않았다. 간혹 어렵게 재건축이 성사되었을 때 청약 경쟁률이 수십대 일 까지 치솟는 것도 나쁘지 않은 광경일 테니까. 벌써부터 강남구 일대는 호가가 오르고 있다. 그 동력이 '국민 정서'로부터, 또 이들의 눈치를 보는 정치인들로부터 나온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이수준 로이에아시아컨설턴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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