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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경찰 숨진 동의대 시위자도 유공자 길 열린다…거야의 입법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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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대 국회 임기를 한 달여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막판 입법 독주에 속도를 내고 있다. 4·10 총선이 끝나자 ‘셀프 특혜법’ 비판을 받아온 민주유공자법(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안)마저 23일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 요구하면서 22대 국회에선 거야(巨野)의 일방적 입법이 더 노골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이날 오전 전체회의를 열어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민주유공자법과 가맹사업법(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 개정안)의 본회의 상정을 요구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두 법안은 지난해 12월 14일 야당 단독으로 소집한 정무위를 통과해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었다. 하지만 국민의힘 소속인 김도읍 법사위원장이 법안 처리에 부정적이라 21대 국회 임기 내 처리가 불발될 가능성이 크자 법사위를 건너뛰는 본회의 직회부 방식을 택한 것이다.

중앙일보

백혜련 국회 정무위원장이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이날 야당 정무위 의원들은 가맹사업법(가맹사업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과 민주유공자법(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안을 단독으로 가결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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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회부 요구 건은 당초 이날 정무위 전체회의 심의 대상도 아니었다. 민주당 간사인 홍성국 의원이 회의 도중 “2건의 안건을 추가 심의해달라”며 의사일정 변경 동의를 요청했고, 민주당 소속 백혜련 정무위원장이 이를 받아들이며 갑작스럽게 심사 대상에 포함돼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백 위원장은 ‘법사위에 회부된 날부터 60일 이내 심사를 마치지 않았을 때는 상임위원장이 의장에게 본회의 부의를 요구할 수 있다’는 국회법 86조 3항을 근거로 2개의 직회부 안건에 대해 무기명 표결을 실시했다. 두 건 모두 백 위원장을 포함한 민주당 의원 11명, 비교섭단체 의원 4명(김종민 새로운미래 의원, 강성희 진보당 의원, 양정숙 개혁신당 의원, 황운하 조국혁신당 의원) 등 참석자 15명 전원 찬성으로 가결 요건(재적 5분의 3 찬성)을 채웠다. 안건 처리에 반발한 국민의힘은 투표에 불참했다.

민주유공자법은 1964년 3월 24일 이후 민주화운동에서의 사망자ㆍ부상자와 가족 및 유가족을 민주화 유공자로 인정하고 이들을 지원하는 내용의 제정법이다. 당초 발의안에는 교육(대입 특별전형 등)ㆍ취업(공공기관 특별채용 등)ㆍ대부(주택대출 등) 등을 지원하는 내용이 담겨 “586 운동권 카르텔 특혜법” “현대판 음서제도” 등의 비판이 일었다. 민주당은 상임위 대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지원 범위를 의료ㆍ양로ㆍ요양 등으로 축소했다.

그럼에도 대상자 선정 등을 두고 논란이 계속됐다. 이 법은 부마항쟁보상법, 민주화보상법 등의 대상자(900여명)를 민주화 유공자로 간주한다. 지난해 12월 14일 정무위에서 이 법을 단독 처리할 때 민주당은 “전태일, 박종철, 이한열 그리고 김오랑 중령까지를 포함해서 민주유공자로 예우할 수 있는 법”(김성주 의원)이라고 주장했지만, 여당 간사인 강민국 국민의힘 의원은 “경찰들이 사망했던 동의대 사건, 활동 자금을 마련한다고 무장강도 행각을 한 남민전 사건 관련자들이 전부 민주유공자 심사 대상”이라며 극구 반대했다. 본회의 직회부가 결정된 이날도 국민의힘 정무위원들은 기자회견을 열어 “민주유공자 심사 기준에 대한 법적 근거도 부재하고, 명단과 공적 모두 사실상 깜깜이”이라고 반대 의견을 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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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국 국민의힘 소속 정무위원회 간사가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퇴장하고 있다. 이날 야당 정무위 의원들은 가맹사업법(가맹사업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과 민주유공자법(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을 국회 본회의에 직회부하는 안을 단독으로 가결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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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전 경기대 교수)은 “특정 계층이나 집단에 혜택을 주는 법안은 자칫 국민 간 형평성을 해치거나 위화감을 조성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서 다뤄야 하고 여야 간 합의를 통해 처리해야 한다”며 “게다가 우리 사회가 민주화 과정에 대해 이중 삼중의 보상 제도를 이미 충분하게 마련해둔 것을 감안하면 21대 국회에서 민주유공자법이 다른 민생 경제 법안보다 더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이유를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날 민주유공자법과 함께 직회부된 가맹사업법은 가맹점주의 단체교섭권을 부여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구체적으로는 가맹점주들이 가맹점주단체를 구성한 뒤 공정위나 지자체장에 이를 등록할 수 있도록 하고, 등록된 가맹점주단체가 가맹본부에 협의를 요청할 경우 가맹본부가 이에 응할 의무를 부여하는 내용이다. 이날 민주당은 “한없이 기울어진 갑을 관계를 조금이나마 바로잡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지만, 국민의힘은 “하나의 프랜차이즈에 다수의 복수 노조가 생겨서 본사와 점주와의 갈등은 불 보듯 뻔하다”고 반박했다.

이밖에도 21대 국회 임기를 한 달여 앞두고 각 상임위에서 민주당 주도의 단독 법안 처리가 본격화하고 있다. 18일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에서 여당 의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양곡관리법·세월호특별법 등 5개 법안이 민주당 주도로 단독 직회부 요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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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이 23일 오전 서울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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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성준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21대 국회를 마무리하기 전에 현재 법사위에 계류 중이거나 본회의에 직회부된 주요 민생법안을 반드시 처리하겠다”며 “공공의대법과 지역의사제법도 통과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이들 법안 역시 지난해 12월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하나하나 풀어가야 하는데 왜 이렇게, 경상도 말로 깽판을 하는 것인가”(강기윤 의원)는 등 여당 의원 반대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주도로 강행 처리돼 현재 법사위에 계류돼있다.

전문가들은 22대 국회서 여소야대 경향이 더 강화한 점을 우려한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민주당은 남은 회기 동안 입법을 밀어붙여서 당장 원하는 성과는 얻을 수 있을지 몰라도, 이런 흐름이 거듭될수록 유권자들로 하여금 ‘표를 괜히 몰아줬나’ 하는 반감을 살 수밖에 없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며 “22대 국회에선 입법 독주는커녕 여야가 각종 특검법을 놓고 씨름하느라 입법 마비 사태를 맞는 게 아닐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용환 기자 jeong.yonghwan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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