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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지평선] 성심당, 1등 빵집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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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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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심당의 튀김소보로와 판타롱부추빵.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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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김소보로빵’으로 유명한 대전 성심당의 임길순(1912~97) 창업주 고향은 사실 함경남도 함주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로 성 베네딕도회 산하 덕원수도원을 다녔던 그는 50년 12월 흥남 부두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를 타고 월남했다. 거제를 거쳐 56년 생계를 위해 서울행 통일호 열차를 탔는데, 도중에 고장이 나 내린 곳이 바로 대전이다. 그는 가족과 함께 대흥동 성당을 찾았고 그 곳에서 얻은 밀가루 두 포대로 시작한 찐빵집이 성심당이다.

□ 임 창업주는 ‘크리스마스의 기적’으로 불리는 메러디스 빅토리호에서 '남은 인생은 어려운 이들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다. 빵집 이름을 예수님 마음을 뜻하는 성심당(聖心堂)이라 짓고, 당일 팔다 남은 빵은 모두 이웃에게 나눠 준 것도 이런 연유다. 그는 시신을 염하는 봉사를 하거나 자신의 내복을 거지에게 벗어주기도 했다. '우리 곁에 불행한 사람을 둔 채 혼자 행복해질 순 없다'는 생각이었다. 87년 6월 민주화 항쟁 당시 시위대에게 빵을 나눠 줬다 잡혀갔으나 전경들이 “우리도 그 빵 먹었다”고 증언해 풀려난 일도 있다.

□ 90년대 임 창업주는 미국 여행 중 뉴저지에 있는 뉴튼수도원에서 메러디스 빅토리호의 선장 레너드 라루와 재회한다. 흥남 철수 당시 1만4,000여 명의 피란민을 살린 그는 그 일을 계기로 수도사가 된 터였다. 40여 년 만에 만난 두 사람은 신앙으로 한마음이 됐다.

□ 성심당이 지난해 매출 1,243억 원, 영업이익 315억 원을 기록했다. 이익만 보면 파리바게뜨를 운영하는 파리크라상(199억 원)과 뚜레쥬르의 CJ푸드빌(214억 원)보다 많아 1등 빵집이다. 직접 빵을 구워 바로 파는 것과 가맹점에 반재료를 공급하는 프랜차이즈를 단순 비교하는 건 무리다. 그러나 착한 동네 빵집이 대자본과의 경쟁에서 이긴 건 의미가 적잖다. 비결은 ‘딸기시루’처럼 가성비가 높다는 점도 꼽히지만 더 근본적인 건 나눔의 철학을 실천해 온 데 있다. 대전 밖엔 지점을 안 내는 이유도 ‘모든 이가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한다’는 사훈과 무관하지 않다. 혼자 잘 살기보다 주위를 이롭게 하는 일을 하며 베푸는 것만큼 향기로운 삶도 없다. 성심당 빵이 맛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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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남철수작전 당시 피란민 1만4,000여 명을 구출한 메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호의 레너드 라루(1914∼2001) 선장. 그는 이후 수도사가 됐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박일근 논설위원 ikpar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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