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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월)

북한, 이제 ’조선’이라고 부르면 어떨까요? [정욱식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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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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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줄여서 조선이라는 호칭이 있는데 왜 북한이라고 부릅니까 ?” 대중 강연을 할 때 , 간혹 받았던 항의성 질문입니다 . 이 질문 속에는 진정한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추구하기 위해서는 정명 (正名) 부터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조언도 담겨 있었습니다 . 하지만 저는 줄곧 ‘ 북한 ’ 이라는 표현을 고수해왔습니다 . 질문을 주신 분에게도 “ 취지는 이해합니다만 , 안 그래도 제가 친북 · 종북으로 비난을 받는 경우가 많은데 , 조선이라고 쓰면 사람들의 편견이 더 강해질 것 같아서 북한으로 부릅니다 ” 라며 이해를 구했던 기억이 납니다 .



남북은 서로를 향해 다양한 호칭을 사용했습니다 . 2000 년 6·15 남북공동선언부터 2018 년 9 월 평양공동선언에 이르기까지 정상들의 서명이 들어간 문서에 ‘ 대한민국 ’ 과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이라고 표기했습니다 . 또 남과 북의 사람들이 접촉 · 대화할 때에는 서로를 향해 ‘ 남 ( 측 )’ 과 ‘ 북 ( 측 )’ 이라고 쓰곤 했습니다 . 이들 경우를 제외하곤 한국에선 ‘ 북한 ’ 을 , 조선에선 ‘ 남조선 ’ 을 공식적으로 사용했고요 . 사실 ‘ 북한 ’ 은 한국의 연장선상에서 , ‘ 남조선 ’ 은 조선의 연장선상에서 표현한 것이라 갈등의 소지가 있었습니다 . 하지만 남북은 이를 크게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 남북관계를 ‘ 국가 대 국가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특수 관계 ’ 로 바라보면서 화해협력과 평화통일을 추구한다는 총론적인 합의가 존재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죠 . 그래서 대화와 협력이 가능했습니다 .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 2018 년 12 월을 끝으로 남북대화는 지금까지 한 차례도 열리지 않고 있고 , 인적 · 물적 교류도 전무한 실정입니다 . 또다시 서로를 ‘ 주적 ’ 이라고 부르고 있고 말폭탄과 무력시위 주고받기가 위험 수위를 넘나들고 있습니다 . 이 와중에 조선은 2023 년 7 월부터 ‘ 남조선 ’ 이 아니라 ‘ 대한민국 ’ 으로 부르기 시작했는데 , 간혹 ‘ 괴뢰 ’ 나 ‘ 것들 ’ 을 앞뒤에 붙여 적대감을 표출하고 있습니다 . 급기야 최근에는 남북관계를 ‘ 적대적이고 교전 중인 두 국가 ’ 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 김정은 정권은 그 주된 이유로 한국이 흡수통일을 추구해왔다는 점을 들었는데 , 윤석열 정부는 ‘ 자유의 북진 ’ 을 더 강하게 외치고 있는 실정입니다 .



많은 사람들은 ‘ 남북이 친해질 수 없다면 , 싸우지나 말지 ’ 라고 탄식어린 희망을 말합니다 . 그래서 저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합니다 . ‘ 조선 ’ 에서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 평화 공존의 출발점은 상호 인정에 있습니다 . 그 상대인 조선은 ‘ 대한민국 ’ 이라고 부르면서 , 자신을 향해서도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조선 ) 이라고 불러달라 ” 라고 요구합니다 .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2020 년 1 월 15 일자 < 중앙일보 > 칼럼에서 “ 실제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북한과 남조선을 의제하여 남북관계로 접근하기보다는 대한민국 ( 한국 ) 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 조선 ) 으로 각자 존재하고 서로 대면하는 게 바른 길 ” 이라고 역설한 바 있는데 , 이제 우리사회가 ‘ 조선 사용하기 ’ 를 진지하게 검토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입니다 .



조선이 요구해서만은 아닙니다 . 대북 강경 일변도인 윤석열 정부조차 ‘ 북한과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 ’ 고 하는데 , ‘ 북한 ’ 이라고 쓰는 순간 대화의 문은 더욱 굳게 닫혀 버립니다 . 그래서 실용적인 차원에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많은 심리학자들은 상대방의 언행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 공감 ’ 에 있다고 말합니다 . 그런데 우리가 ‘ 북한 ’ 을 고수하면 조선인들은 공감은 고사하고 반감부터 갖게 되겠지요 . 각종 스포츠 대회에서 조선팀 감독이 한국 기자가 ‘ 북한 ’ 이라고 표현하면 강력히 항의하면서 답변을 거부한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습니다 . 이는 거꾸로 우리가 ‘ 조선 ’ 이라고 쓰면 그들과 최소한의 공감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 대화의 문을 여는 데에도 도움이 되겠지요 .



논란의 여지가 클 줄 압니다 . 동시에 한반도 구성원들이 처한 불행한 현실을 직시할 필요는 있을 겁니다 . 한국과 조선이 가장 가까운 이웃이면서 가장 적대적인 관계이기 때문이죠 . 그래서 켜켜이 쌓여가는 적대성의 완화를 ‘ 제 이름 불러주기 ’ 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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