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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단독]버티던 민생경제 직격탄…26년 만에 쪼그라든 사업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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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사업체 600만개…14만개 줄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감소

휴·폐업 사업체 57만개 육박

'확인불가'만 33만개, 휴·폐업 더 많을 듯

"경기 나빠 문 닫는 사업체 늘어날 것"

아시아경제

지난해 9월 서울 중구 명동 한 상가에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 사진=강진형 기자aymsdr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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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는 서울 관악구에서 3년 가까이 운영하던 카페를 폐업하기로 결심했다. 창업 초기에는 장사가 어느 정도 됐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영업이익이 줄어 최근에는 4분의 1로 쪼그라들었다. 물가가 워낙 오르다 보니 장사가 잘되는 성수기에도 재료비와 전기료를 빼면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A씨는 창업 과정에서 빚이 불어나는 바람에 개인회생까지 신청한 상태다.

지난해 국내 사업체가 약 14만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체가 줄어든 것은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시기였던 1998년 이후 26년 만에 처음이다.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는 통계인 ‘휴·폐업’ 사업체는 57만개에 육박했다. 올해도 내수 침체에서 벗어나기 힘들다는 전망이 우세해 사업체가 더 줄어들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때도 꾸준히 증가해 온 한국 경제의 양적 성장에 빨간불이 켜졌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년 만에 사업체 14만개 소멸, 외환위기 이후 처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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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아시아경제가 입수한 통계청 ‘2024년 전국사업체조사 결과’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전국 사업체는 600만3639개로 잠정 집계됐다. 2022년 613만9899개에서 13만6260개(2.2%) 감소했다.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 등 물리적 장소가 없는 사업체까지 통계에 포함하기 시작한 2020년(603만2022개)과 비교해도 더 적은 수치다. 이 같은 결과는 조정과 분석을 거쳐 오는 9월 공표된다.

전국사업체조사는 국내에서 산업활동을 수행하는 모든 사업체의 지역별 규모와 분포, 고용구조를 파악하는 통계작업이다. 여러 영업장을 거느린 법인을 하나로 간주하는 기업조사와 달리 상점과 음식점 등을 개별적으로 살펴보기 때문에 민생경기를 보다 세세하게 파악할 수 있다. 올해에는 예산 270억6000만원, 조사인 1만1945명을 투입해 714만7276개 사업장을 전수 조사했다. 통계청은 현재 조사와 데이터 입력 및 정리를 마친 상태다.

사업체조사 통계를 작성한 1994년 이래 사업체가 감소한 것은 1998년이 유일했다. 1997년 285만개였던 사업체는 외환위기 여파로 이듬해 278만개로 줄었다. 하지만 1999년에는 292만개로 회복했다. 21세기 한국의 첫 경제위기라 불리는 카드대란 직후인 2004년에도 국내 사업체는 2000여개(0.1%) 늘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0.1%), 2021년 코로나19 팬데믹(0.8%) 때도 소폭이나마 증가세를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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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소세는 수도권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서울에 위치한 사업체는 112만6021개로 전년 대비 5만4004개(4.5%) 줄어 4년 연속 감소세를 기록했다. 감소 규모와 폭 모두 광역지방자치단체 중 1위다. 경기도와 인천시도 사업체가 각 4만1564개(2.7%), 7339개(2.3%) 줄어 평균치를 웃돌았다.

통계청은 “4분기 자료가 갱신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수치는 확정치가 아니다”면서 “이후 검수를 하면 숫자가 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감소세 자체를 바꾸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감소 폭이 13만개를 넘어설 정도로 크고, 검수 과정 역시 변동이나 오류를 확인하는 절차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직전 조사 때도 통계청은 확정치가 아닌 잠정치를 배포했는데 차이가 1000여개 정도에 그쳤다.

57만개 줄줄이 휴·폐업…"삼중고에 앞으로 더 걱정"
사업체 감소의 가장 큰 이유는 ‘휴·폐업’이었다. 통계청은 기업 조사와 달리 사업체 조사에 휴·폐업 현황을 공개하지 않는다. 사업체의 규모와 매출 등을 파악하는 취지와 맞지 않다는 게 이유다. 본지 취재 결과로는 휴·폐업 사업체가 56만9930개로 파악됐다. 조사 대상에서 제외된 ‘유고 사업체’ 114만3637개의 절반이다. 영위를 파악하지 못한 ‘확인 불가’ 사업체가 33만3487개(29.1%)임을 고려하면 실제 문 닫은 사업체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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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의 상황도 녹록지 않다. 지난해 국내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대비 3.6%였다. 지난 1월에는 2.8%로 반년 만에 2%대를 기록했지만 2월(3.1%)과 3월(3.1%)은 3%대를 넘겼다. 이스라엘·이란 간 중동전쟁 우려로 유가가 오르고, 1400원대에 근접하는 고환율이 이어지면 당분간 고물가 기조는 불가피하다. 여기에 전기료 등의 공공요금이 오르면 올해도 2%대 물가를 장담하기 어렵다. 고물가는 가계 구매력 저하로 이어져 내수침체의 악순환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

타격은 영세한 소상공인이 더 크게 받을 전망이다. 지난해 소기업·소상공인이 폐업·노령 등으로 생계위협을 받을 때 신청하는 ‘노란우산공제’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양경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중소벤처기업부·중소기업중앙회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폐업 사유 공제금 지급건수는 전년 대비 20.7% 늘어난 11만15건에 달했다. 지급액도 지난해 1조2600억원으로 처음 1조원대를 넘겼다.

전문가들은 2022년부터 시작된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민생경제에 직격탄이 됐다고 지적했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삼중고가 계속된 탓에 (사업체의) 체력이 튼튼해지지 않고 약해져 왔다”면서 “지금도 경기가 좋지 않은 만큼 문을 닫는 사업체들이 점점 많아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기업의 자산 규모나 매출, 종업원 숫자를 함께 고려해서 봐야 한다”면서도 “상대적으로 경쟁력 없는 기업들이 정리되며 줄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세종=송승섭 기자 tmdtjq8506@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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