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5.01 (수)

“빅뱅이론 시효 끝나”… ‘우리가 알고 있던 우주’가 흔들린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영국서 ‘표준 우주론 도전’ 주제 회의

동아일보

현대 표준 우주론 모델은 약 138억 년 전 대폭발인 ‘빅뱅’을 시작으로 우주가 급격히 팽창하며 어떻게 진화했는지 설명한다. NASA, WMAP Science Team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약 138억 년 전 대폭발을 통해 우주가 탄생해 팽창하고 있다는 ‘빅뱅이론’을 중심으로 한 현대 표준 우주론이 거센 도전을 받고 있다. 천문학자들이 기존 우주론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천체 관측 결과들을 속속 내놓고 있기 때문이다. 표준 우주론의 유효 기간이 사실상 끝나 수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영국왕립학회는 15∼16일(현지 시간) 이틀간 ‘표준 우주론 모델에 도전하다’를 주제로 회의를 열었다. 최근 현대 표준 우주론과 맞지 않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라 발표되며 기존 이론에 의문을 제기하려는 천문학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201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제임스 피블스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 등 저명한 천문학자들이 참석했다.

현재 표준 우주론 모델인 ‘람다 차가운 암흑물질(LCDM) 우주론’은 138억 년 전 대폭발인 ‘빅뱅’을 시작으로 우주가 급격히 팽창해 어떻게 진화했는지 설명한다. LCDM에 따르면 우주에는 물질과 아직 정체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암흑물질, 암흑에너지가 존재한다. 물질과 암흑물질은 우주의 팽창 속도를 늦추지만 암흑에너지는 우주 팽창을 가속한다. 손우현 한국천문연구원(KASI) 이론천문센터 연구원은 “표준 우주론 모델은 그동안 관측 데이터와 잘 맞아떨어져서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회의의 공동 주최자인 수비르 사르카르 영국 옥스퍼드대 물리학과 교수는 “우주론은 1922년에 공식화된 모델을 사용하고 있다”며 “표준 우주론 모델에 대한 믿음이 ‘종교’로 취급되고 있는데 이론적 근거는 유효 기간이 지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회의에서는 표준 우주론으로 설명되지 않거나 표준 우주론과 맞지 않는 연구 사례들이 주로 소개됐다. 우주 관측 기술이 발전하고 연구 규모가 커지면서 도출된 연구 결과들이 표준 우주론과 ‘엇박자’를 내고 있다.

대표적인 게 허블상수의 계산값을 두고 논쟁하는 ‘허블 갈등’이다. 허블상수는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를 나타내며 우주 나이와 반비례한다. 허블상수가 커지면 상대적으로 우주의 나이는 적어진다. 웬디 프리드먼 미국 시카고대 천문학 및 천체물리학부 교수는 회의 첫날 “최근 제임스웹 우주망원경(JWST) 관측으로 측정한 허블상수가 메가파섹(Mpc·1pc은 약 3.26광년)당 69.1km/s”라고 발표했다. 이는 1메가파섹(약 300만 광년) 떨어져 있는 은하들이 69.1km/s의 속도로 서로 멀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유럽우주국(ESA)의 플랑크 위성이 측정해 2018년 발표한 허블상수인 메가파섹당 67km/s와는 차이가 있다.

애덤 리스 미국 존스홉킨스대 물리학 및 천문학과 교수팀도 프리드먼 교수팀의 연구와 같은 유형의 3가지 천체를 JWST로 관측해 허블상수가 메가파섹당 최소 73km/s라는 연구 결과를 올해 공개했다. 같은 우주망원경을 활용한 연구 결과 2개가 기존 우주론과는 ‘다른 의견’을 낸 것이다.

우주가 전체적으로 큰 규모에서는 균질해야 한다는 표준 우주론의 가정과는 다른 현상도 공개됐다. 네이선 세크레스트 미국 해군천문대 연구원은 100만 개 이상의 퀘이사를 분석하자 하늘의 한쪽 반구가 다른 반구보다 광원이 0.5%가량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콘스탄티노스 미카스 네덜란드 레이던대 과학부 레이던천문대 연구원은 지역적 규모에서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가 공간에 따라 달라 표준 우주론의 예측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관측 결과를 공유했다. 이 밖에도 지름이 13억 광년이나 되는 거대 천체 ‘빅 링’ 등 기존 우주론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관측 결과에 대한 토론이 이번 회의에서 진행됐다.

한국천문연구원이 참여한 국제공동 프로젝트인 ‘암흑에너지 관측 프로젝트(DESI)’ 연구팀도 최근 1년 치 연구 성과를 발표하며 암흑에너지가 고정값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변하는 값일 확률이 약 95%라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기존 우주론에서 암흑에너지는 일정한 값으로 유지되며 우주는 계속 팽창한다. 만일 암흑에너지가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값이라면 모델을 수정해야 할 수도 있다. 손 연구원은 “영국에서 열린 회의와 DESI 프로젝트는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기존 우주론에 의문을 제기한다는 점에서 연결점이 있다”고 말했다.

우주론에 의문을 제기한 과학자들은 아직 연구 데이터가 더 필요하다는 데는 동의한다. 리스 교수는 “JWST를 활용해 허블상수를 측정한 두 연구는 기존 연구에 비하면 작은 규모”라며 “아직 JWST 데이터에서 결론을 도출하기엔 너무 이르다”고 밝혔다. DESI 연구팀도 “더 많은 데이터를 수집해야 새로운 우주 모델을 만들어야 할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엘레오노라 디 발렌티노 영국 셰필드대 수학 및 통계학부 연구원은 “현재까지 최소 500개의 새로운 우주론 모델이 제안됐지만 모든 관측값과 양립할 수 있는 이론은 아직 없다”고 말했다. 프리드먼 교수는 “표준 모델이 어디서 무너지는지에 대한 탐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병구 동아사이언스 기자 2bottle9@donga.com

ⓒ 동아일보 & donga.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