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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일본 해충에 손상된 관서명승도첩, 우리 기술로 18개월간 완벽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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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수 당시 작품에 벌레 구멍 수백 개 뚫려

국내에 살지 않는 일본의 대표적 서적해충

작품 복원용 비단 국내 기술로 제작·사용

일본에 의지하던 복원용 비단 국산화 성공

헤럴드경제

서울역사박물관은 일본 해충에 의해 심하게 손상된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77호 ‘관서명승도첩’(關西名勝圖帖)을 약 1년 6개월간 순수 우리 기술로 완벽하게 복원해 공개한다고 18일 밝혔다.[서울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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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김수한 기자] 서울역사박물관은 일본 해충에 의해 심하게 손상된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77호 ‘관서명승도첩’(關西名勝圖帖)을 약 1년 6개월간 순수 우리 기술로 완벽하게 복원해 공개한다고 18일 밝혔다.

관서명승도첩은 작자 미상의 19세기 실경산수화로, 평안도의 명승을 중심으로 주변 경관을 담은 총 16면의 화첩이다.

평안도 영변, 평양, 강동, 성천, 삼등, 은산, 안주, 강계, 의주를 대표하는 명소를 비단에 청록 채색으로 그린 작품으로 2003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177호로 지정됐다. 총 9개 마을, 14개 명승지가 한 폭 또는 여러 폭에 나눠 그려져 있다.

이 작품은 입수 당시 앞·뒤를 관통하는 1∼2㎜의 작은 구멍 수백 개가 뚫려 있는 등 벌레에 의한 손상이 심한 상태였다.

입수 후 분석 과정에서 그림 뒷면에 수십 마리의 벌레 시체와 애벌레, 분비물 등이 확인됐다.

여기서 나온 벌레는 문화재 가해 해충인 딱정벌레목 빗살수염벌레과로 국내에 서식하지 않는 일본의 대표적인 서적해충으로 밝혀졌다. 서적해충이란 서적을 갉아 먹으며 구멍을 뚫는 해충을 일컫는 표현으로, 이 그림이 언젠가 일본으로 반입돼 일본 해충에 손상된 것으로 추정할 수밖에 없다.

입수 후 보존처리 작업은 서울역사박물관의 전문인력과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의 협력해 진행됐다.

이 작품은 그림이 그려진 비단의 훼손이 심한 상태였다. 비단의 손상이 심한 부분은 조직이나 재질, 열화 정도가 같은 비단을 사용해 복원한다. 만약 비슷한 재질이나 조직의 비단을 쓰지 않으면 작품에 쓴 비단과 동화되지 않아 오히려 작품을 훼손할 수 있다.

보존처리용 전자선 열화비단은 한국원자력연구원 첨단방사선연구소가 운영하고 있는 전자가속기를 이용해 만들었다.

전자가속기에서 인출되는 높은 에너지의 전자빔을 복원 소재인 비단에 쏘게 되면 비단의 화학적 결합이 깨져 작품에 남아 있는 비단과 비슷한 수준의 열화 정도를 보인다. 전자가속기는 전자총에서 나오는 전자를 빛의 속도에 가깝게 빠르게 움직이도록 해 높은 에너지의 전자선을 만들어내는 장치다. 소재의 멸균, 결합, 분해 등의 반응을 유도하는 용도로 쓰인다.

과거 전자선 열화비단은 일본에서 수입해 썼으나 가격이 매우 고가여서 수급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번 작품 복원을 위해 사상 최초로 우리 과학기술로 전자선 열화비단을 직접 제작했다.

일본으로 유출돼 일본 현지에서 손상된 것으로 추정되는 높은 가치의 우리 문화유산을 우리 과학기술로 만들어낸 소재로 복원한 것이다.

또한 이번 사례는 국내 과학기술로 전자선 열화비단을 제작해 유물의 보존 처리에 사용한 최초의 사례다.

전자선 열화비단이란 전자선을 쬐어 비단의 강도를 인공적으로 약화시킨 비단을 말한다.

연구팀은 이번 경험을 바탕으로 향후 전자선 조사 선량별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유물 강도에 맞는 열화를 조절할 수 있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렇게 되면 시대별 회화유물의 복원이 보다 활성화될 전망이다.

이번 보존처리의 또 하나의 성과는 숨겨진 그림을 발견해 복원했다는 점이다.

이 작품 가장자리는 약 2㎝ 폭의 흰색 종이로 둘러싸여 있었고, 흰색 종이 부분에서도 그림이 확인돼 복원 과정에서 흰색 종이를 분리하고 원화를 드러냈다.

복원된 관서명승도첩은 올해 7월 서울역사박물관 상설전시실에 전시될 예정이다.

관련 정보는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에도 게시된다.

최병구 서울역사박물관장은 “벌레로 손상된 귀중한 유물을 국내 기술로 복원함으로써 보존과학 분야의 새장을 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면서 “박물관은 보존처리에 대한 연구뿐 아니라 소장품의 훼손을 막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soohan@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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