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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1 (수)

[일사일언] 세계문학전집에 한국 작가들이 들어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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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지리아 출신의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는 서구 위주의 문학에 대해 지적한 바 있다. 그는 나이지리아에서 나고 자랐음에도, 어린 시절 자신이 읽고 쓰던 이야기 속 등장인물은 모두 백인에 푸른 눈을 가진 인물이었으며, 서구 문화를 일부 답습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우리가 읽는 책의 형편은 좀 다를까? 책장에 꽂혀 있는 세계문학 전집을 살펴본다. 셰익스피어의 ‘햄릿’부터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까지, 책장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의아함을 느끼게 된다. 세계문학전집에는 영미권 문학이 가장 많고, 그다음은 프랑스·러시아·독일·일본 순이다. 거기서도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 저자가 더할 나위 없이 적다는 것을 쉽게 알아챌 수 있다. 아쉬운 일이다. 앞서 치마만다가 지적한 대로 쉽게 읽고 접할 수 있는 세계문학 속 문화적 다양성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다.

그런 아쉬움 속에서, 김혜순 시인의 전미 도서비평가협회상(NBCC) 수상 소식은 특별히 기쁜 일이다. 그리핀 시문학상에 이은 두 번째 수상이다. 수상 자체도 물론 희소식이지만, 가장 반가운 것은 김혜순 시인의 수상을 계기로 아시안 여성 문학인의 작품을 우리나라를 넘어서 세계 각국에 보급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녀뿐만 아니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상을 받은 한강 작가는 최근 프랑스 4대 문학상인 메디치상을 수상했으며, 아동문학계의 노벨문학상으로 불리는 안데르센상에 이금이 작가가 최종 후보로 오르기도 했다. 세계문학의 여러 장에 한국의 로컬 문화·정서가 포함된 문학이 한 자리씩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런 상상을 해본다. 400년이 지나서도 세계 각지 누구나 아는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한 구절 “제가 그대를 여름날에 비교해도 될까요?”처럼, 김혜순 시인의 시가 먼 미래 세대에 읽히는 것을. “습한 여름에도 발아래 땅이 한없이 멀어지는 그런 가을이 온 것 같고/네 목구멍이 목마름으로 타들어 가듯/네 몸의 새가 타올랐음, 해(‘찬란했음 해’ 중에서)” 그때 세계문학 전집의 책장 속에는 과연 몇 명의 한국인이 있을까.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하게 된다.

[추성은·2024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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