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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사설]이종섭 25일 만에 사퇴, 윤 대통령 ‘불통 국정·국격 추락’ 사과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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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주호주 대사)이 지난 21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한 뒤 기자들의 질문을 받으며 이동하고 있다. ‘채 상병 사건’ 피의자인 이 전 장관의 대사 임명과 출국을 둘러싸고 ‘수사 회피’ 논란이 제기됐다. 조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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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채모 상병 사망 사건’ 수사 외압 의혹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수사를 받고 있는 이종섭 주호주대사가 29일 사퇴했다. 임명된 지 25일 만이다. 이 대사 사의를 윤석열 대통령이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했지만, 험악해진 총선 민심에 더는 버티기 힘들어 여권이 이 대사를 사퇴시킨 걸로 보는 시각이 많다. 만시지탄이다.

이 대사는 ‘해병대 수사 외압’ 의혹의 당사자이자 ‘윤 대통령 격노·외압’ 의혹의 핵심 연결고리로 지목된 인물이다. 그런 사람을 해외공관장에 임명하면 수사 방해·해외 도피 논란이 일 것은 불보듯 뻔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이 그를 특명전권대사에 임명하면서 이 사태가 시작됐다. 그후 법무부가 서둘러 이 대사 출국금지를 해제하고 이 대사가 야반도주하듯 호주로 떠나면서 국민적 의혹과 공분이 커진 것이다.

대통령실은 지난 18일 “이 대사에 대한 검증 과정에서 고발 내용을 검토한 결과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고 앞질러갔다. 그러면서 “공수처가 조사 준비가 되지 않아 소환도 안 한 상태에서 재외공관장이 국내에 들어와 마냥 대기하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고 했다. 대통령실은 공수처에 수사 가이드라인을 내고 압박했다는 시비를 자초했다. 그러더니 여론이 험악해지자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회의를 급조해 이 대사를 불러들였고, 빗발치는 여론과 맞서며 버티다 결국 손을 든 셈이다.

국격은 추락했다. 호주 공영언론 ABC방송이 ‘한국 대사 이종섭, 자국 비리 수사에도 호주 입국’ 기사를 보도했고, 미국 외교전문매체 디플로맷은 “한국의 이익을 대표하는 떳떳한 관리보다는 도망자처럼 보였다”고 혹평했다. 호주 상원의원은 “이 대사 파견은 호주뿐 아니라 호주 한인들에게도 무례한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후 이 대사 귀국 알리바이용으로 급조한 방산협력 주요 공관장회의는 한국의 외교·국정을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부적격자 대사가 25일 만에 물러나면서 커다란 외교 결례와 국제적 망신을 샀다.

이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윤 대통령에게 있다. 혹여 이 대사 사퇴로 문제가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윤 대통령은 피의자 대사를 왜 임명했고 왜 해임이 아닌 사퇴를 시켰는지 경위를 밝히고, 국민 앞에 사과해야 한다. 차제에 불통식 국정운영도 뜯어고치겠다고 약속해야 한다.

이 대사는 이날 사의를 밝히면서 공수처에 조속한 조사를 거듭 촉구했다. 그러나 피의자 조사는 수사기관이 준비가 되었을 때 하는 것이다. 공수처는 아직 압수물 분석도 끝내지 못했고, 이 대사가 지난 7일 4시간 약식조사 때 제출한 휴대전화는 수사 외압 의혹이 발생한 뒤 사용한 것이다. 중요 사건 피의자로서 겸허하고 성실히 수사에 응하는 게 이 대사가 할 일이다. 공수처는 공수처대로 인력을 보강해 수사 속도를 높이고,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와 관련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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