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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횡단보도서 치여 보상 요구... 7년 끈 판결, 법원장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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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희대 대법원장 “재판 지체... 법원장도 맡아라”

28일 오후 2시 서울중앙지법 374호 법정에 김정중 중앙지법원장이 재판장으로 들어왔다. 그동안 법원장들은 재판을 하지 않았지만 조희대 대법원장이 ‘재판 지체’를 완화하기 위해 법원장들에게도 재판을 맡기기 시작했다.

조선일보

김정중 서울중앙지방법원장이 28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장기미제사건 민사단독(재정단독) 재판부 첫 재판을 진행하기에 앞서 소감을 밝히고 있다. 김 법원장은 이날 재판에서 7년간 재판이 지연됐던 교통사고 피해자의 보험사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을 심리한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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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중 법원장은 이날 재판 시작에 앞서 “재판 장기화에 대한 비판과 국민적 불안 여론이 높아진 상황”이라며 “신속한 재판을 위한 법원의 변화와 노력에 대한 기대가 크다는 것을 실감한다”고 말했다.

이날 김 법원장이 재판한 사건은 7년간 판결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사건은 2011년 2월 김모씨가 서울 구로구 신도림역 근처 횡단보도를 건너던 중 교차로에서 우회전하던 차량에 사고를 당하면서 시작됐다. 김씨는 사고 이후 극심한 통증을 겪게 되자 가해 차량 보험사를 상대로 2017년 3월 소송을 냈다.

재판은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 부분에서 발목이 잡혔다. 배상액을 정하려면 김씨가 앞으로 몇 년간 더 일할 수 있는지를 정해야 했다. 김씨는 만 65세를 기준으로 근무 연한을 정해야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김씨가 사고 전부터 중증 기저 질환에 해당하는 뇌종양의 일종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김씨의 기대 수명이 4년만 남아있다는 의료 감정 결과도 재판부에 제출됐다. 의료진에 따르면 김씨가 만 65세까지 살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의료 감정 결과와 달리 김씨는 4년을 넘겨 생존했고, 건강도 전보다 나아졌다. 김씨는 재판에서 의료 감정 결과보다 더 오래살았기 때문에 본인에게 남은 생존 기간도 4년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했다. 더 오래 일할 수 있으니 그만큼 배상액도 많아야 한다는 취지다.

이 사건은 7년간 6번의 재판을 열었지만 양측 주장이 좁혀지지 않아 결국 조정에 넘겨졌다. 조정도 결렬되며 재판이 장기화됐다고 한다.

김 법원장은 이날 그동안 재판 진행 내용을 당사자들에게 설명하는 갱신 절차를 거치고 손해액 산정을 위한 쟁점들을 다시 정리했다. 그는 김씨 측에 “만 65세까지 일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입은 상해로 줄어든 수입을 지급받는 방식으로 손해배상 청구 취지를 바꿔야 한다”며 “변론 종결시까지 확정 손해액을 산정해달라”고 했다. 보험사 측에는 “의료 감정 결과가 불합리하다는 특별한 근거가 없다면 추가 감정 신청은 불필요하다”며 “추가 심리가 필요한 부분은 서면으로 제출해달라”고 했다.

김 법원장은 “추가 심리할 부분이 다 정리된 것 같다”며 “재판이 너무 오래 걸렸는데 다음 기일에 절차를 마무리하고 판단하겠다”고 했다. 김 법원장은 내달 25일 마지막 재판을 열기로 했다. 이날 재판에선 무단횡단을 하던 초등학생이 당한 교통사고 손해배상 사건 등 총 6건에 대한 심리가 이뤄졌다. 한 법조인은 “재판 경험이 많은 법원장이다보니 쟁점 정리도 빨리 마치고 소송당사자가 준비해야 할 내용도 쉽게 정리하는 등 능숙하게 재판을 진행하기 마련”이라고 했다.

현재 서울중앙지법을 포함한 전국 37개 법원은 모두 법원장 재판부를 가동 중이다. 지난 14일 수원지법을 시작으로 서울행정법원과 서울북부지법, 서울동부지법, 서울남부지법이 줄줄이 법원장 직접 재판에 나섰다. 법원 관계자는 “장기미제 사건을 법원장이 담당하면 일선 재판부도 사건 처리 속도가 높아지는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했다.

[허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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