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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8 (일)

이슈 끝나지 않은 신분제의 유습 '갑질'

채용 조건 말 바꾼 기업 갑질 처벌, 30인 미만 사업장엔 적용 안 된다 [슬직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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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인 미만 사업장은 사각지대 놓여

채용 시즌 맞아 익명신고 페이지 운영

#A씨는 한 광고회사의 구인 광고를 보고, 지원을 결심했다. 직원 수 25명의 중소기업이지만, 정규직으로 신입 연봉 4000만원이라는 적지 않은 연봉이 좋은 조건이라고 생각했다. 어렵게 면접을 통과한 A씨는 근로 계약서를 받아든 뒤 황당함을 감출 수 없었다. 정규직 채용이라는 애초 말과 달리 1달 계약직이었으며, 수습 기간을 마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준다는 것이었다. A씨는 고용노동부 지방노동청 문을 두드렸다. 돌아온 답은 더 허망했다. 30인 미만 기업이기 때문에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 적용이 안 된다는 설명이었다.

세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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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채용 광고와 다른 근로 계약 조건을 맺게 하는 것은 불법이다. 채용절차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채용절차법) 4조의2는 정당한 사유 없이 채용 광고 내용을 구직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중소기업일수록 이 같은 백태가 만연한데, 채용절차법은 30인 미만 기업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고용노동부가 청년들이 많이 몸담은 기업들의 채용 환경을 예의주시해 감독하겠다고 했지만,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지난달 노동시민단체인 직장갑질119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근로자의 16.8%는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았다. 특히 근로계약서 미작성률은 기업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은 사업장에서 더 높았다. 위반율을 보면 민간 5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42.1%에 달했다.

면접 갑질과 면접 후 근로조건 말 바꾸기도 여실히 드러났다. 설문에서 17.4%는 입사 전과 후 근로조건이 달랐다고 밝혔다. 직장갑질 관계자는 “기본노동조건을 보호할 노동법의 제정 목적은 사업장의 규모, 성별, 고용형태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며 “노동자가 최소한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와 국회가 보완입법을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여당인 국민의힘이 채용비리 또는 채용 강요 행위의 처벌을 강화하는 법 개정은 당론으로 채택했으나, 국회의 발의된 해당 개정안에도 여전히 적용 범위는 상시 근로자 30인 이상 사업장이다. 계류 중인 개정안은 채용 광고의 근로 조건이 변경되면 사전에 구직자에게 고지하도록 사업주에게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다만 법이 통과되더라도 30인 미만 사업장에서는 청년 노동자를 보호하기 어렵다.

관련해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현행 근로기준법도 5인 미만 사업장에는 적용되지 않듯, 행정력의 한계 등이 고려돼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자 보호도 중요하지만, 법 적용 대상을 확대했을 때 관리·감독할 수 있을지도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미다.

고용부는 상반기 채용 시즌을 맞아 내달까지 워크넷에 채용절차법을 어긴 기업에 대해 익명신고 웹페이지를 신설해 운영한다. 올해 상반기(5~6월) 불공정채용 점검 시에는 익명신고가 접수된 사업장과 함께, 온라인 채용공고 모니터링에서 적발된 사업장, 채용 강요가 의심되는 건설사업장 등 600개소에 대해 지도 점검을 실시한다. 지도 점검에서 채용절차법 위반 여부가 확인되면 최대 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계획이다.

이지민 기자 aaaa3469@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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