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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이슈 양승태와 '사법농단'

임종헌도 재판 개입 무죄… 직권남용 일부 유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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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행정권 남용’ 1심 집행유예

이른바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기소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5일 1심 재판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핵심 혐의인 ‘재판 개입’이 모두 무죄가 되면서 검찰 구형(징역 7년)보다 낮은 형이 나온 것이다. 임 전 차장은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기소된 전현직 법관 14명 중에 마지막으로 1심 판결을 선고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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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5일 1심 선고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가는 모습.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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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 형사36-1부(재판장 김현순)는 이날 판결을 선고하면서 “오늘 법원은 임 전 차장에 대한 도덕적‧정치적 책임 유무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오로지 법적인 면에서 죄가 되는지만 판단했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47분간 판결문을 빠르게 읽는 동안 임 전 차장은 아무 말 없이 아래만 바라봤다. 지난 2018년 11월 기소된 이후 1909일 만에 1심 판결을 받은 것이다.

임 전 차장에게는 ‘재판 개입’ ‘판사 블랙리스트’ ‘법관 비위 은폐’ 등 혐의가 적용됐다.

재판부는 이날 임 전 차장이 법원행정처 심의관 등에게 각종 지시를 내려 일제 강제 동원과 위안부 사건 재판에 개입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는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는 “다른 판사의 재판에 개입할 직권 자체가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 범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에 따른 것이다. 재판부는 “강제 동원 재판과 관련한 임 전 차장의 지시는 재판 독립을 침해하려는 내용이 아니었다”면서 “위안부 재판에서도 임 전 차장의 지시가 재판 진행이나 결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없어 보인다”고 했다. 임 전 차장이 재판 개입 혐의에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으로 기소돼 지금까지 판결을 받은 전현직 법관 14명의 재판 개입 혐의는 모두 무죄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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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철원


또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물의 야기 법관’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줬다는 혐의, 국제인권법연구회 산하 ‘인권과 사법제도 소모임’ 와해를 시도했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무죄라고 판단했다. ‘정운호 게이트’ 등과 관련된 판사 비위를 감추려 했다는 혐의도 무죄로 봤다.

앞서 임 전 차장과 혐의가 중복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대법관과 고영한 전 대법관도 지난달 26일 1심 재판에서 47개 혐의에 대해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한편 이날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의 일부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선고했다. 임 전 차장은 지난 2013년 정부가 전교조에 대해 ‘법외(法外) 노조’ 처분을 내린 사건 재판과 관련해 법원행정처 심의관에게 자료를 작성하라고 지시했는데 이 자료는 박근혜 청와대에 전달된 것으로 나타났다. 재판부는 “임 전 차장이 소송의 한쪽 당사자인 정부에 도움 주기 위해 지시한 것으로 직권남용이 인정된다”며 “이는 심의관이 수행해야 할 업무도 아니다”라고 했다. 다만 이 행위도 전교조 재판의 절차나 판결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고 봤다.

또 임 전 차장은 지난 2016년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던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홍일표 의원의 부탁을 받고 법률 대응 방안을 검토해 마련해 준 혐의도 유죄로 인정됐다. 같은 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던 당시 민주당 유동수 의원 부탁을 받고 형량 검토를 해 준 혐의도 유죄가 됐다.

이와 함께 임 전 차장이 기획재정부 공무원들과 국회의원들을 속여 공보관실 운영비 명목으로 정부 예산을 받아 대법원장 격려금을 마련했다는 혐의, 헌법재판소 파견 법관을 통해 헌재 내부 정보를 수집한 혐의 등도 유죄로 판단됐다.

임 전 차장은 이날 선고 이후 아무 말 없이 법원을 떠났다. 검찰은 “판결의 사실 인정과 법리 판단을 면밀하게 검토·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임 전 차장은 재판 초기 503일간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 이 재판의 첫 재판장은 윤종섭 부장판사였다. 앞서 윤 부장판사는 김명수 전 대법원장과의 면담에서 “사법 행정권 남용 사건 연루자들을 단죄해야 한다”는 취지로 말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대법원장은 ‘중앙지법 3년 근무’ 원칙을 어기고 윤 부장판사를 6년간 중앙지법에 두고 재판을 맡겼다. 임 전 차장은 “윤 부장판사가 유죄 심증을 갖고 재판을 부당하게 진행한다”며 두 차례 기피 신청을 내기도 했다. 윤 부장판사는 지난 2022년 2월까지 이 재판을 심리하다가 이후 다른 법원으로 이동했다.

[방극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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