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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5 (수)

이슈 국악 한마당

"위기 때마다 날 일으켜세운 국악 … 미래명인 키워 보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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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가운데)이 남산국악당에서 소고를 치고 있는 국악 영재들 사이에서 손뼉을 치며 화답하고 있다. 김호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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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외환위기로 수많은 기업들이 쓰러져가던 때, 크라운제과도 부도 위기를 넘지 못했다. 2세 경영인인 윤영달 크라운해태 회장(78)은 당시 법원에 화의를 신청하고 피눈물을 흘리며 북한산을 올랐다. 어느 바위에선가 쉬고 있었을 때 구슬픈 대금 소리가 흘러나왔다. 맑고 청아한 소리는 절망과 분노로 불타던 마음을 신기하게도 조금씩 가라앉혔다. 그때부터였다. 힘들 때마다 국악에 의지하고, 25년째 국악 전도사로 나선 것이.

지난 10일 서울 중구 남산한옥마을 남산국악당에서 만난 윤 회장은 "IMF 당시 대금 소리인지도 몰랐는데 눈물이 핑 돌기 시작했다"며 "예술이 가져다주는 치유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회상했다.

그는 매주 일요일 오후 3시쯤이면 남산한옥마을을 찾는다. 남산국악당에서 공연하는 국악 영재들을 만나기 위해서다. 2017년 크라운해태는 오래된 지하 1층을 보수하고 리모델링해 국악 전용 공연장인 크라운해태홀을 지었다. 이날은 2015년부터 크라운해태가 거의 매주 주최한 '영재한음(국악)회' 205회 공연이 열리는 날이었다. 200회 특별공연은 한 달 전 성황리에 치러졌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국악 영재들은 소고와 부채, 장구, 꽹과리, 가야금을 들고 '국악 할아버지'와 반갑게 인사했다. 전국 경연을 통해 선정된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이다.

객석 맨 뒤에서 카메라로 공연 영상을 찍는 윤 회장은 "1년에 40번 정도, 해외 출장을 가지 않는 한 매주 일요일 이곳에 온다"며 "아이들 공연을 보지 못하면 왠지 서운하다"고 말했다.

음악에 문외한이지만 그는 20여 년간 우리 가락을 듣다 보니 귀가 살짝 열렸다고 말했다.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국악을 많이 듣다 보니까 대충 무슨 곡인지, 악기도 알게 됐죠. 더 친근감이 들고. 우리 음악엔 푸근함이 있구나 느끼죠."

정통 국악이 갈수록 사라지고 있는 현상은 안타깝기만 하다.

"20대 프로 공연자들은 대부분 퓨전으로 가죠. 명인분들은 모두 80대고. 결국 우리 전통을 보존하는 것은 영재밖에 없겠다 생각이 들어요. 지금 공연하는 이 녀석들이 미래 명인인 거죠. 꾸준히만 하면."

크라운해태는 1년에 100여 명씩 국악영재를 새로 배출하고 있다. 무대를 거쳐간 영재들은 총 2000명이 넘는다. 국악 사랑은 단순히 경영자의 취미나 후원 활동으로 그치지 않는다. 윤 회장은 '생존전략'이라고 강조했다. 2003년 크라운제과가 법정 화의를 끝내고 국악 명인들을 위한 공연을 열었다. 초대장을 전국 슈퍼마켓 점주들에게 돌렸다.

"혹시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봐 전 직원이 나와서 대기를 했어요. 그런데 공연이 대성공을 거두었어요. 거래처 사장님들이 직접 온 게 아니라 어머님, 아버님에게 표를 줬더군요. 부모님들이 공연을 보시고 너무 좋아하셨죠."

당시 크라운제과는 업계 4등이어서 슈퍼마켓 매대에 과자를 올리기 어려웠다.

"과자는 매대에 못 올라가면 끝이에요. 그래서 점주분들과의 관계가 정말 중요하죠. 영업사원들이 공연을 매개로 점주들과 대화를 하고 관계를 쌓으면서 매출이 급증했어요."

2005년 해태제과를 인수하며 조직의 화합적 결합을 일군 밑거름도 예술이었다. 크라운해태는 문학에서는 시를, 미술에서는 조각을 10여 년째 후원하고 있다. "조각을 하는 과정이 과자 만드는 것과 똑같아요.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구조화하는 것이. 과자 모양 하나하나가 조각이죠."

직원들은 '과자 굽는 예술가'가 돼 매년 눈 조각을 만들고, 우수 작품에 선정되면 스위스 바젤 아트페어를 비롯한 전 세계 미술 전시를 관람하는 특혜를 누린다. 예술적 눈을 키운 만큼 손끝에서 신제품을 만들 확률이 높다는 게 윤 회장 생각이다.

원재료 값은 급증하고 아이들은 줄고 있다. 과자 시장에 악재다. 그는 "여러 가지를 시도하고 있다"고 했다. 앞으로 계획을 묻자 "영재국악회를 어떻게 자립시킬 것인가. 내가 죽고서도 지속적으로 가게 할 것인가가 숙제"라고 말했다.

[이향휘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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