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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이슈 강제징용 피해자와 소송

‘징용 노동자상 모델은 일본인’ 주장…대법 “명예훼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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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운성·김서경 작가 부부, 손배청구 소송 패소

한겨레

서울 용산역광장에 세워진 강제징용 노동자상.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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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을 떠난 조선 노동자들을 기리는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제작한 조각가 부부가 “노동자상 모델이 일본인”이라고 주장한 이들이 자신의 명예를 훼손했다며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최종 패소했다. 예술작품에 대한 감상자의 주관적인 의견 표명까지 ‘명예훼손’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다.

30일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제작한 김운성·김서경 조각가 부부가 이우연 낙성대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수긍해 상고 기각했다. 김 작가 부부가 김소연 전 대전시의원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원고 패소 취지로 파기 환송했다. 김 작가 부부가 이 위원과 김 전 의원에게 각각 낸 소송에서 모두 패소한 셈이다.

이 소송은 2019년 피고들이 ‘강제징용 노동자상 모델은 일본인’이라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이 위원과 김 전 의원은 페이스북과 보도자료 등을 통해 “강제징용 노동자상 모델은 일본 홋카이도 토목 공사 현장에서 혹사당한 일본인 노동자”라거나 “강제징용 노동자상은 역사왜곡”이라는 주장을 수차례 폈다. 김 작가 부부는 곧바로 이들을 명예훼손 등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냈지만, 형사 사건은 무혐의 처리됐다.

4년째 이어져 온 민사 소송에서 하급심 법원은 매번 엇갈린 판단을 내놨다. 이 위원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1심은 김 작가 부부의 손을 들어줬으나 2심은 결론을 뒤집어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반대로 김 전 의원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는 1심에서 김 작가 부부가 패소했으나 2심에서는 승소했다. 두 사건은 소송 내용이 거의 같은데도 각 법원의 ‘민법상 불법행위가 되는 명예훼손’에 대한 해석이 갈렸다.

대법원은 “강제징용 노동자상의 모델은 일본인”이라는 발언은 ‘주관적 평가’라고 판단했다. 애초에 진위를 증명할 수 없는 ‘조각상이 실제로 누구를 모델로 했는지’에 대한 의혹 제기 내지는 비판적 의견 표명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예술작품이 어떤 형상을 추구하고 어떻게 보이는지는 작품이 외부에 공개되는 순간부터 감상자의 주관적 평가의 영역에 놓인다”며 “비평 자체로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해 타인의 인격권을 침해하는 정도에 이르지 않는다면 섣불리 명예훼손으로 평가하는 것에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법원은 피고들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도 갖췄다고 봤다. 앞서 노동자상과 유사하다고 지목된 일본인들의 사진이 꽤 오랜 기간 국내 교과서나 국립역사관 등에 ‘조선인 강제징용 노동자’로 소개된 바 있었고, 이후 그들이 일본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져 교체·삭제되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대법원은 “이 발언들이 설혹 진실한 사실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피고들로서는 발언 당시 그 내용이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었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판단했다.

이지혜 기자 god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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