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지지자 두려워해 아슬아슬 줄타기하는 트럼프 라이벌들"
美 공화 잠룡들 "정치적 기소"…라이벌 디샌티스 "범죄인 인도 지원 안해"
트럼프에 독 될까 약 될까…지지층 결집엔 이득, 본선경쟁력·중도표엔 악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 |
(워싱턴=연합뉴스) 이상헌 특파원 황철환 기자 = 내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전 대통령이 30일(현지시간) 형사 기소되면서 미국 공화당 대선구도가 요동치고 있다.
이번 기소는 공화당 내 '친(親)트럼프' 세력을 결집시켜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둔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그와 경쟁 중인 공화당 내 잠룡들은 일단 한목소리로 검찰을 비난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공화당 지지층으로부터 압도적인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그를 비난하기엔 정치적 부담이 큰 데다 이번 사안이 당내 문제나 사법적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 사안으로 변질하고 있는 흐름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공화당 내 다크호스로 떠오른 론 디샌티스 플로리다주지사는 이날 기소 직후 트위터에 글을 올려 "정치적 어젠다를 조장하기 위한 법체계의 무기화는 법의 지배를 전면에 내세운다"며 "이는 비(非)미국적"이라고 말했다.
이어 "소로스의 지원을 받은 맨해튼 지방검사는 중범죄 경시와 범죄에 대한 감독 소홀을 변명하려고 법을 끊임없이 왜곡해왔다"며 "이제 그는 정치적 적수를 표적으로 삼으려 법을 곡해하고 있다"고 앨빈 브래그 맨해튼 지방검사장을 맹비난했다.
투자의 귀재 조지 소로스는 진보 진영의 대표적 후원자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수사를 총괄한 브래그 검사장을 공격할 때 '소로스의 후원'을 적극 주장하며 집중적으로 부각해왔는데, 트럼프 전 대통령의 표현을 그대로 살려 브래그 검사장을 비판한 것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이날 기소 직후 성명에서도 "소로스가 직접 선택해 선거 자금을 제공한 브래그 검사장은 수치"라고 맹폭한 바 있다.
론 디샌티스 미국 플로리다주지사 |
디샌티스 주지사는 또 "플로리다는 소로스 지원을 받는 맨해튼 검사와 그의 정치적 어젠다에 대해 문제가 되는 의심스러운 상황을 감안할 때 (트럼프에 대한) 범죄인 인도 요청을 지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소지가 플로리다주여서 맨해튼 검찰이 그를 법정으로 데려가기 위한 협조 요청을 할 경우 응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트럼프 측 변호인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스스로 다음 주에 법정에 설 예정이라고 말해 강제 구인 사태는 벌어지지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리틀 트럼프'로도 불린 디샌티스 주지사는 아직 대선 출마를 공식화하지 않았지만 트럼프의 최대 경쟁자로 분류된다.
작년 말 한때 공화당 차기대선 경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앞지르기도 했다가 최근 조사에선 다소 격차가 벌어지고는 있다.
전날 공개된 퀴니피액대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47%, 디샌티스 주지사는 33%를, 폭스뉴스 조사에선 트럼프 54%, 디샌티스 24%로 격차를 보였다.
하지만 디샌티스 주지사의 잠재적 경쟁력은 여전하다는 평가가 많다.
니키 헤일리 미국 전 유엔대사 |
트럼프에 이어 두번째로 대선 출마를 선언한 니키 헤일리 전 유엔대사는 트위터에 "기소는 정의가 아닌 복수에 대한 것"이라고 검찰을 비판하며 최근 자신의 폭스뉴스 인터뷰를 게시했다.
그는 당시 인터뷰에서 "내가 이 뉴욕 지방검사한테서 본 모든 것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트럼프 기소를 "정치적 기소"라고 불렀다.
헤일리 전 대사는 차기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75세 이상 정치인의 정신 감정을 주장하며 조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을 동시에 저격한 인물이다.
트럼프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낸 마이크 펜스는 이날 CNN에 출연해 "선거자금 문제에 대한 전직 대통령의 전례 없는 기소는 분노"라며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에게 그것은 말 그대로 전직 대통령을 기소하겠다고 서약하고 공직에 나선 한 검사가 주도하는 정치적 기소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이크 펜스 미국 전 부통령 |
펜스 전 부통령 역시 차기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그는 지난 11일 중견언론인 모임 만찬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저지른 '1·6 의회 난입 사태'와 관련해 "역사가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맹비난하기도 했던 인물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당시 지지자들의 폭력을 선동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번 기소에 대해선 "국가에 대한 폐해"라며 국민을 분열시킬 뿐이라고도 했다.
이번 기소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대선 후보에서 실격시켜야 하는지, 그가 경선을 포기해야 하는지를 묻자 "가설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며 언급을 피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은 트위터에 글을 올려 "브래그 검사는 강력범죄 기소를 거부하고 중범죄의 절반 이상을 경범죄로 깎아내린, 소로스의 자금을 받은 검사"라고 기소를 비난했다.
폼페이오는 트럼프 정부에서 국무장관은 물론 중앙정보국(CIA) 국장도 역임했다. 그 역시 차기 대선 출마를 검토하고 있다.
그는 "심각한 범죄를 기소하는 것은 미국인을 안전하게 지켜주지만, 정치적 기소는 미국 사법체계를 남용의 도구로 보는 위험에 처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전 국무장관 |
이처럼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내 경쟁자들이 일제히 트럼프를 옹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발신한 것을 두고 블룸버그 통신은 "트럼프의 라이벌들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고 촌평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지지자들을 외면하고 그를 기소하는 민주당원을 선호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을 두려워해 맨해튼 지방검사에 반대하고 나선 것"이라고 했다.
미국 정치권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사상 첫 전직 대통령 형사기소라는 위기를 공화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확고한 선두로 치고올라가는 기회로 바꿀 수 있을지에 촉각을 세우는 모양새다.
한 민주당 선거 전략가는 AFP 통신에 "지지 기반의 결집을 가져오면서 여론조사에서 트럼프의 지지가 확 올라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트럼프 수호'로 당내 목소리가 통일되면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차별화를 시도하던 다른 대선주자들의 입지가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부상이 2024년 미국 대선에서 공화당의 본선 경쟁력에 오히려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작년 11월 미국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나팔수 노릇을 한 극우 후보들이 본선에서 줄줄이 나가떨어진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당시 민주당은 공화당 후보경선에 개입해 친(親)트럼프 성향 극우인사들이 후보가 되도록 돕는 '역선택' 전략을 펼쳤고, 이에 힙입어 공천을 따낸 극우 후보들은 2020년 미국 대선이 부정선거였다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주장을 되풀이하다 중도·부동층 유권자의 외면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퀴니피액대가 최근 전국 유권자 1천600명을 상대로 진행한 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은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가상대결에서 48%의 지지를 얻어 2%포인트 앞섰지만, 디샌티스 주지사와의 양자대결에서는 46% 지지로 오히려 2%포인트 뒤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honeybe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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