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족 제공] |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어제 밤 11시쯤 자고 있는데 침대가 흔들려서 깼어요"→"그런 경우가 더러 있어요. 알아도 모르는 척 하는 것이 피차간의 예의랍니다."(2022년 11월10일 마지막 답변)
네이버 '지식인(iN)'에 '녹야(綠野)'라는 아이디로 2004년부터 지난해 11월10일까지 수많은 답변을 남기며 '지식인 할아버지'로 불린 조광현(曺廣鉉)옹이 27일 오후 10시께 서울 한 병원에서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29일 전했다. 향년 87세(만).
경기도 김포에서 태어난 고인은 경복고, 서울대 치대를 졸업한 뒤 1962∼1995년 서울 종로→신촌→홍대입구에서 영진치과를 운영했다. 한겨레신문과 인터뷰에선 "내가 고집이 세서 돈을 잘 못 벌었습니다…간호사 월급 줄 돈도 없어서 나 혼자 일할 때가 많았어요. 청소도 내가 직접 하고. 그래도 아내가 돈을 벌어서 예순한살 때 치과를 아예 그만두었지요."라고 말했다. 부인인 늘샘 권오실(1936∼2022)씨는 1980년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서예부문)을 대상을 받고, 한국미술협회 부이사장까지 지낸 유명한 서예가였다.
조옹은 2004년부터 네이버 지식인에 답변을 달기 시작했다. 중앙일보(2020년 7월15일)는 "2004년부터 16년간 4만 건 넘는 답글을 달았다"고 썼다. '하수-평민-시민-초수-중수-고수-영웅-지존-초인-식물신-바람신-물신-달신-별신-태양신-은하신-우주신-수호신-절대신' 등급 중 고인은 두번째로 높은 '수호신' 등급이었다.
[네이버 지식인 캡처] |
고인이 '지식인 스타'로 불린 건 답변 건수나 등급 때문이 아니었다. 전공인 치아 관련 지식이나 국민학교 입학 전에 4천자를 외웠다는 한문 실력 등 풍부한 교양을 바탕으로 여유와 위트가 넘치고, 인생의 지혜가 담긴 답변을 해서 인기를 끌었다.
한겨레신문과 중앙일보 인터뷰에 소개된 문답은 다음과 같다.
▲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아들은 세뱃돈이나 한 달 용돈이 얼마 정도나 될까요?"→"그런 생각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자꾸 살기가 힘들어지고 싫어집니다."
▲ "아버지 재산이 얼만지 모르겠는데, 평소에 명품가방도 선물해주고, 주위 사람들 말로는 아버지 재산이 몇백억원이래요. 이 정도면 아버지 잘 만난 건가요?"→"아버지는 잘 만나고 잘 못 만나고가 없습니다. 그냥 주어진 운명일 뿐입니다."
▲ "산타 할아버지 나이는 몇살인가요?"→"아빠 나이와 동갑입니다"
▲ "엄마가 브래지어 하지 말라는데 어떡하죠?"→"엄마 먼저 하나 사드리세요."
▲ "용돈 달라고 공손히 말하는 법?"→"엄마 아빠 이런 생각 해봤어요? 사랑하는 자녀가 돈 때문에 다른 애들한테 왕따당하는 꼴을.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 "할아버지, 제가 요즘 공부도 재미없고 지루한데 조언 좀 해주세요."→"나는 공부가 재미없고 지루한 사람한테는 할 얘기가 없습니다. 내 얘기도 지루할 테니까요."
2019년 연합뉴스 인터뷰 당시 컴퓨터 화면을 응시하는 고인 |
연합뉴스와도 2019년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1985년 제7회 치과의료문화상, 1994년 제2회 서울치과의사회 공로대상, 2008년 네이버 파워지식IN상을 받았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15호실에 마련됐고, 발인은 30일 오전 6시15분. ☎ 02-3410-6915
2019년 연합뉴스 인터뷰 당시 촬영한 고인의 책상 |
chungwon@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연합뉴스 앱 지금 바로 다운받기~
▶네이버 연합뉴스 채널 구독하기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