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개혁 반대' 쓰레기 수거업체 2주 넘게 파업…약 1만t 쓰레기 쌓여
"노동자의 파업할 권리 이해" vs "진동하는 악취 점점 참기 힘들어진다"
프랑스 파리를 상징하는 에펠탑이 보이는 인도에 쌓인 쓰레기들 |
(파리=연합뉴스) 현혜란 특파원 = 이제 막 꽃이 피기 시작한 프랑스 수도 파리 절반 가까이가 쓰레기로 덮여있어 꽃향기가 퍼져야 할 거리에는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
기온이 올라갈수록 냄새가 심해져 쓰레기 옆을 지날 때마다 손으로 코를 막아야 하고, 인상이 찌푸려지기 일쑤다. 쓰레기 옆에서 버스라도 기다릴 때면 심심찮게 쥐를 목격할 수 있다.
프랑스 정부가 정년 연장을 골자로 추진하는 연금 개혁에 반대하며 파리의 절반을 담당하는 쓰레기 수거업체가 2주 넘게 파업하면서 1만t에 달하는 쓰레기들이 길거리에 쌓여 빚어진 풍경이다.
3월 6일부터 이어지고 있는 파리 쓰레기 수거 업체의 파업은 다른 부문 파업보다 상대적으로 더 피부에 와닿는 불편을 초래하다 보니, 연금 개혁 반대 파업하면 떠오르는 '아이콘'으로 여겨지고 있다.
파리에 있는 전체 20개 구 중에서 지방자치단체가 쓰레기 수거를 담당하는 10개 구에서 쓰레기 수거가 이뤄지지 않고 있어, 파리에서 연금 개혁 반대 시위가 열리면 불쏘시개로 쓰이기도 한다.
23일(현지시간) 쓰레기 더미 사이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니 "냄새가 나서 불쾌하다"라거나 "위생이 걱정된다"고 불평했지만 그래도 파업할 권리를 존중한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스웨덴에서 왔다는 관광객 니콜라(30) 씨는 "아무런 이유 없이 이렇게 쓰레기가 쌓여있다면 파리에 대한 인상이 나빴겠지만,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파업 때문이라니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15구에 살고 있는 마젤라(52) 씨는 "곳곳에 쌓인 쓰레기들이 성가시지 않다면 거짓말"이라면서도 본인도 연금 개혁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약간의 불편함"을 견디고 있다고 설명했다.
파리 경찰청이 파업에 들어간 쓰레기 수거업체 직원 일부를 징발하면서 조금씩 쓰레기가 사라지고 있지만 여전히 파리 전역에 쌓인 쓰레기는 9천t이 넘는다고 파리시청이 밝혔다.
쓰레기 수거를 못 하도록 끈으로 묶은 쓰레기통 |
이러한 징발을 방해하기 위한 운동도 등장했다. 기후변화와 싸우는 시민단체 알테르나티바 파리는 쓰레기 수거업체 노조의 파업을 지원하기 위해 플라스틱 끈으로 쓰레기통을 묶는 캠페인을 고안했다.
파업에 들어간 환경미화원들이 정부의 징발 명령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쓰레기를 수거하러 왔을 때 쓰레기통을 움직일 수 없게 만들어 수거를 지연시키겠다는 게 캠페인의 목적이다.
알테르나티바 파리는 지난 18일 상점에서 쉽게 구매할 수 있는 끈으로 쓰레기통을 고정하는 방법을 설명한 19초짜리 영상을 트위터에 올렸는데, 닷새 만에 조회 수가 21만회를 넘어섰다.
가이아 뮈글러(31) 알테르나티바 파리 대변인은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거리에 쓰레기가 쌓일수록 사람들의 분노가 얼마나 큰지 확인할 수 있다"고 캠페인을 벌이는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쓰레기를 치우지 않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문제도 가시화하고 있다. 특히 음식물 쓰레기를 비롯한 각종 쓰레기가 매일 발생하는 식당에서 그 어려움을 크게 느끼고 있다.
파리 16구에서 한식당을 29년째 운영하는 조성한(56) 씨는 길거리에 쓰레기가 넘쳐 쥐들이 득실거릴 수밖에 없다며 "식당을 운영하는 입장에서 위생 걱정을 안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조 씨는 날이 따뜻해지는 4월이면 식당 밖 테라스에 자리를 만들어 손님을 받을 생각이었는데, 파업이 이어져 쓰레기가 계속 길거리에 쌓여있다면 그 계획도 접어야 할 판이라고 전했다.
정부와 노동조합이 이른 시일 내에 타협할 기미가 보이지 않다 보니 집과 가게 앞에 쌓인 쓰레기를 치우기 위해 민간 청소 업체를 고용하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16구 과일가게에서 일하는 에즈퀴엘 씨는 주변 상인들과 돈을 모아 가게 앞에 있는 쓰레기를 한번 치웠다며 "악취가 점점 심해져 어쩔 수 없이 돈을 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파리 쓰레기 수거업체 노조는 이달 27일까지 파업을 연장하면서, 정부가 정년 연장 계획을 철회하지 않으면 파업을 계속 연장하겠다고 경고했다.
정부는 연금 제도가 적자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연금 수령을 시작하는 나이, 즉 퇴직 연령을 현행 62세에서 2030년까지 64세로 높이려고 한다.
고된 육체노동을 하기 때문에 57세에 조기 퇴직할 수 있는 쓰레기 수거업체 직원들의 정년은 이번 개혁으로 59세로 늘어난다.
프랑스 파리 16구에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 |
runra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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