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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 (일)

[신동욱 앵커의 시선] 봄 이기는 겨울이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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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봄은, 섬진강 따라 올라옵니다. 시인의 귀엔, 남도에 봄 오는 소리, 꽃피는 아우성이 북소리로 들립니다.

고수(鼓手)처럼 묵직하게 앉은 지리산은, 섬진강이 판소리 하듯 흘러 한 굽이 틀 때마다, 난타로 매화를 터뜨리고 동백을 떨굽니다.

"지리산 앉고, 섬진강은 참 긴 소리다. 이 미친 향기의 북채는 어디 숨어 춤추나. 매화 폭발 자욱한 그 아래를 봐라. 동백의 대가리들. 선혈의 천둥, 난타가 지나간다"

지는 동백 신호탄 삼아 지리산 자락 섬진강변엔 줄 폭죽 터지듯 봄꽃이 터집니다. 광양 매화, 구례 산수유가 흐드러지면, 강 건너 하동 화개 십리 길에 벚꽃 비가 내립니다. 봄은 가려움증입니다.

"엉킨 산수유들이, 몸을 연신 하늘에 문대고 있다. 노란 꽃망울이 툭툭 터져 물처럼 번진다"

봄은 무등산 자락, 고즈넉한 절집 댓돌에 놓인 고무신에도 내려앉습니다.

"문빈정사 섬돌 위에, 눈빛 맑은 스님의 털신 한 켤레. 어느 날 새의 깃털처럼 하얀, 고무신으로 바뀌었네"

"기다리지 않아도 오고, 기다림마저 잃었을 때도 너는 온다"는 봄입니다. 하지만 올봄은 두 팔 벌려 껴안고 싶도록 반갑고, 그래서 더욱 찬란합니다.

3년 만에 마침내 마스크를 벗어 던진 이 봄, 꽃들도 유난히 일찍 찾아왔습니다. 어서 달려와 알싸한 봄 향기 맡으라고, 꽃 축제들도 4년 만에 다투어 문을 열어젖혔습니다.

지난 일요일 막을 내린 광양 매화축제는 역대 가장 많은 122만 상춘객을 불러 모았습니다. 부산 벚꽃은 102년 만에 가장 빨리 피었고, 화려한 벚꽃 축제 '진해 군항제'가 이번 주말 모처럼 돌아옵니다.

순천 선암사, 6백 살 매화 거목 선암매는 이미 끝물입니다. 붉다 못해 피처럼 검붉어서 '흑매'라고 부르는, 구례 화엄사 홍매화도 벌써 절정에 올라, 사진가들이 연일 진을 칩니다.

길고 어두운 역병의 터널을 끝내 벗어난 도시도, 싱숭생숭 봄치레를 합니다.

휴일 낮, 화사한 등산복을 차려입고 신촌역 마을버스에 오른 할머니 두 분이, 젊은 운전기사에게 말을 건넵니다.

"여보시우 젊은 양반! 오늘같이 젊은 날은, 마음껏 사랑하시구료. 그래야 산천도 다 환해진다우"

옛말에 '꽃씨 뿌려 가꾸기는 일 년이지만, 꽃 보기는 열흘'이라고 했습니다.

봄날이 가기 전에, 비 그쳐 눈부신 꽃 세상을 이번 주말엔, 모두들 원 없이 누리시면 좋겠습니다.

3월 23일 앵커의 시선은 '봄 이기는 겨울이 있으랴' 였습니다.

신동욱 기자(tjmicm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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