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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분양사기·부실시공·고된 노동… 꿈꾸던 전원주택 곳곳 '지뢰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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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바로잡습니다



한국일보 5월 27일자 3면 '꿈꾸던 전원주택 곳곳 지뢰밭'에 실린 그래픽의 주택 사진은 기사 내용과 전혀 관련이 없음을 밝힙니다. 배경사진의 출처를 꼼꼼히 살피지 못한 데 대해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구합니다.



도시인들 동경의 대상


느긋한 삶 누리고 싶어 전원주택 찾는 사람 급증

귀농·귀촌 10년 새 35배↑


전원생활 꿈 이뤘지만…


주택·밭 가꾸느라 녹초… 겨울엔 기름값 대기 벅차

이웃 사귀기도 힘들어


전문가 도움 받는 게 안전


미개발지 샀다 낭패 십상… 날림공사로 애먹기도

답사·등기부 확인이 필수


경기 양평군의 한 전원주택. 그림 같은 집 주변 600평 대지에 싹을 틔운 온갖 작물이 초록물결처럼 일렁였다. 그런데 누구나 부러워할 전원생활의 꿈을 이룬 집주인 이모(58)씨의 표정이 어두웠다. "남 보기엔 좋아 보이겠지만 제 속은 썩어 들어갑니다." 그는 넓은 정원과 밭을 가꾸는 노동이 고역으로 바뀐 지 오래라고 한숨만 쉬었다.

이씨 부부는 8년 전 전원주택을 장만했다. 자녀 학업 문제로 주말에만 와서 지내는 두 집 살림을 했다. 1시간 넘게 차를 달려 도착하면 일거리가 잔뜩 쌓여 있었다. 주말 내내 전원주택과 밭을 가꾸느라 녹초가 돼 월요일을 맞았다. 집과 땅을 망가뜨릴 수 없어 정성을 쏟았건만 겨울이면 기름보일러가 얼어붙어 고장 나기 일쑤였고, 한 드럼에 25만원 넘는 기름값을 감당하기도 버거웠다.

이웃과 어울리는 일은 또 다른 고역이었다. 원주민들은 농한기에 함께 눈을 치우고, 마을회관에 오순도순 모여 하루를 보냈다. 주말에만 방문하는 이씨 부부가 끼어들 틈은 좁았고, 서로 오가는 언어도 달랐다. 도시생활에 워낙 익숙했던 탓인지 짬을 내 오래 머무는 기간에도 대형마트나 영화관 같은 편의시설이 그리웠다.

결국 이씨 부부는 최근 8년이나 정든 전원주택을 부동산에 내놓았다. 비록 땅값은 두 배 가까이 올랐지만, 전원주택은 아파트와 달리 거래가 뜸해 찾는 사람이 없다. 이씨는 "주변에서 전원주택을 산다고 하면 일단 말리고 본다"고 했다.

전원주택은 도시의 각박한 삶에 찌들은 직장인들에겐 동경의 대상이다. 은퇴자, 치열한 경쟁에서 벗어나 느긋한 삶을 추구하는 다운시프트(downshift)족, 귀농ㆍ귀촌 인구가 늘면서 전원주택 시장도 급속히 커지고 있다. 특히 귀농ㆍ귀촌 인구는 지난해 기준 2만7,000가구로 불과 10년 새 35배나 폭증했다.

그러나 꿈에 그리던 전원주택으로 가는 길은 곳곳이 지뢰밭이다. 부지를 찾고 집을 짓는 과정에서 분양사기, 부실시공을 맞닥뜨리는 경우가 허다하다. 막연한 기대 탓에 미처 예상치 못했던 노동 강도, 공동체 부적응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꼼꼼한 준비가 없으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라는 얘기다.

무엇보다 전원주택을 지을 땅을 매입하는 일이 쉽지 않다. 토지개발을 제한하는 각종 규제가 일반인이 이해하기엔 복잡하기 때문이다. 1개 필지에 20개가 넘는 규제가 적용되는 곳도 있다. 예컨대 개발이 불가능한 자연녹지는 등기부등본 대신 토지이용계획확인서를 떼봐야 알 수 있다. 이를 악용한 범죄도 발생한다. 실제 올해 4월 경기 용인시 일대 자연녹지를 전원주택 용지로 속여 140억원을 챙긴 일당이 검찰에 붙잡혔다.

기획부동산 업자에게서 미(未)개발지를 샀다가 낭패를 보는 경우도 흔하다. 수십 개로 쪼개진 땅 가운데 하나를 살 경우, 진입로를 내려면 다른 땅 주인들의 허락이 필요하다. 그러나 땅 주인들이 전국에 흩어져 있고 간신히 연락이 닿아도 의견을 통일하기가 어렵다. 전원주택정보업체 OK시골 김경래 대표는 "전원주택 강의에서 만나는 수강생 30명 중 1, 2명은 이처럼 땅을 사놓고도 못 짓고 있다"고 전했다.

시공 과정에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비용, 친분 등의 이유로 전문업체 대신 지인이나 영세업체에 공사를 맡겼다가 피해를 입기도 한다. 경기 이천시에서 전원주택 중개업을 하는 박규선(51) 이천와우부동산 대표는 "전원주택 건축업자 대부분이 영세해 하자보수가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귀띔했다.

경치 좋은 곳, 외진 곳, 넓은 땅만 고집해서도 안 된다. 강원도 숲 속 땅을 산 변모(61)씨는 뒤늦게 자비로 전기를 연결해야 한다는 걸 알게 됐다. 그는 공사기간 내내 자가발전기를 이용하느라 수백 만원의 추가비용이 들었고, 결국 전선 연결에 엄청난 돈을 써야 했다.

자신의 노동력은 따지지 않고 무조건 크게만 짓다가 결국 포기하고 집을 망치거나 주변에 어울릴 이웃이 없어 도시로 돌아오고 싶어하는 경우도 생긴다. 문제는 전원주택은 짓기도 어렵지만 거래가 잘 되지 않아 출구전략도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전원주택을 매입할 때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게 안전하다고 조언한다. 김경래 대표는 "기반시설이 설치된 택지를 분양 받는 게 낫고, 직접 토지를 개발할 때는 공인중개사 등에게서 정보를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규선 대표는 "현장답사, 등기부등본 확인은 필수"라면서 "집을 사기에 앞서 이웃을 사귀고, 시간을 보낼 취미를 갖는 등 전원주택 장만보다 전원생활에 대한 준비를 먼저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김민호기자 kimon87@hk.co.kr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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