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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5 (토)

[취재파일] "국민연금 '국가 지급보장' 말로만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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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와 여당이 국민연금의 국가 지급보장을 해주는 척하다가 지급보장 안하는 쪽으로 급격하게 입장을 바꿨습니다. 아예 처음부터 말을 꺼내지 말았으면 좋았을 것을 괜히 지급보장하겠다고 말했다가 없던 얘기로 치자고 하니 “국민연금 국가 지급보장은 절대 없다”고 못 박는 꼴이 돼버렸습니다.

정부와 여당에 대한 신뢰야 어차피 높지 않았으니 신뢰 붕괴는 별 문제가 아닌데 국민연금 가입자들 불만이 이만저만 아닙니다. 정부는 여기에다 지급보장 안되는 논리를 구구절절 갖다붙이고 있는데 그 논리가 군색합니다. 노림수는 따로 있다는 뒷말만 무성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국민연금 국가 지급보장은 당연한 일

국가가 강제로 국민연금 보험료를 징수해서 관리하고 연금을 지급하는 것이니 국민연금은 당연히 국가가 지급을 보장해야 합니다. 보장 못하면 ‘국가의 실패’입니다. 정부도 지급을 보장한다고 말은 합니다. 국민연금공단의 공익광고도 수차례 지급 보장을 강조했고, 박근혜 대통령도 보건복지부 업무보고 때 지급 보장을 재차 확인했습니다.

문제는 이런 약속이 그저 말뿐인 약속이라는 겁니다. 국민연금법에는 지급보장 조항이 없습니다. 지급보장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국민연금 기금이 고갈돼서 국민연금이 파산해도 가입자들이 낸 돈을 돌려받을 법적인 근거가 없다는 뜻입니다. 정부가 그때 가서 돈 없다고 모른 척해버리면 가입자들은 비빌 언덕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급보장 명문화는 필요한 겁니다.

국민연금과 빗대 형평성 시비의 단골 손님인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은 관련 법에 국가 지급보장 조항이 있습니다. 공무원과 군인은 국가가 고용주이기 때문에 지급보장이 당연하다는 이유에섭니다. 그러면 사학연금의 사립학교 교사도 고용주가 국가일까요? 사립학교 교사의 고용주는 사립학교 이사장입니다. 그래도 국가가 지급보장 해주는 것으로 법은 돼있습니다. 법적으로 지급보장 안되는 국민연금 가입자들이 억울할 만 한 일입니다.

당정합의ㆍ야당 찬성으로도 넘기 힘든 산

지난 4월 5일 새누리당 보건복지위원회 의원들과 보건복지부는 국민연금 국가 지급보장 명문화에 합의했습니다. 이 당정합의 소식에 기자는 의아했습니다. 보건복지부는 작년까지만 해도 지급보장 명문화를 결사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야당이 줄기차게 지급보장 명문화를 요구해도 이런저런 이유로 거부했던 보건복지부입니다.

어쨌든 당정이 합의하고 야당이 찬성하는 일이니 명문화는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국민연금 지급보장을 담은 법률 개정안은 국회 보건복지위에서도 순조롭게 통과됐습니다. 그런데 청와대와 기획재정부가 제동을 걸고 나섰습니다. “국민연금을 국가가 지급보장해버리면 그 충당액이 국가 채무로 잡힌다” “국가 채무가 커지면 국가 신인도가 하락한다” 이것이 반대 논리입니다.

새누리당 지도부가 청와대와 기재부의 이런 우려를 받아들였습니다. 결국 그제 국회 법사위에서 관련 법률 개정안은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당정이 합의하고 야당이 찬성하는 법안이 무산되는 유례없는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지급보증과 국가채무는 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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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을 지급보증했을 때 충당액이 국가채무에 잡히지 않는다 것이 다수의 의견입니다. 새누리당 보건복지위도 국민연금 지급보장이 국가 신인도에 전혀 영향이 없고, 설령 정부가 국가부채로 잡는다 하더라도 IMF나 OECD의 부채 지표에는 반영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현재 국가가 지급보증하고 있는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도 그 충당액이 4백~5백조인데 국가채무로 계산되지 않습니다.

국가채무가 커져서 신인도 떨어진다는 청와대와 기획재정부의 노림수는 뭘까요? 빈약한 논리를 우겨대며 여당과 야당, 정부의 일을 가로막은 셈이니 “속셈은 따로 있다”라는 관측이 나옵니다. 그 속셈이란 것은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을 위한 사전작업!

국민연금 보험료 인상은 불가피합니다. 2060년이면 국민연금 기금이 완전 고갈되는데 보험료를 올려야 그 이후에도 연금 지급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연금 보험료 올리려면 가입자들의 저항이 간단치 않습니다. 1988년 국민연금이 도입된 이래 연금 보험료는 계속 올랐고, 연금액수는 계속 줄었습니다. 이것을 정부는 개혁이라고 부르는데 국민연금 개혁의 역사는 결과적으로는 ‘가입자 이익 축소’의 역사 돼버렸습니다. 또 보험료 올리자고 하면 큰 홍역 치를 것이 뻔합니다.

여기에다가 ‘국민연금 국가 지급보장’ 조항이 있으면 홍역의 강도는 더 커집니다. “연금 지급이 법으로 보장됐는데 왜 보험료를 더 내느냐”라는 저항이 발생한다는 것이죠. 정부 입장에서는 감당못할 저항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저항이 두려우면 애초에 지급보장하자고 당정합의를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지금와서 없던 일로 해버리면 “국민연금 지급보장 명문화는 절대 없다”라고 재차 삼차 확인해주는 꼴밖에 더 되겠습니까. 가만히 둬도 국민연금 가입자의 불만이 큰데 긁어 부스럼 만들었습니다.

법사위는 지급보장 명문화 관련 법안을 보건복지위로 내려보내 다시 논의하게 했습니다. “지급보장하기 위해 노력한다”식으로 법안의 톤을 낮추라는 주문도 함께 내려 보냈습니다. 지급보장 하기 위해 노력한다? 노력은 했는데 안되면 어쩔 수 없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다른 말로는 “지급보장 못해준다”입니다. 청와대, 기획재정부, 새누리당이 큰 실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태훈 기자 oneway@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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