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는 데 부채질, 호박에다 말뚝 박고, 새 망건편자 끊고…"
판소리 흥보가에서 열거하는 놀부 심보에 '망건편자 끊기'가 있습니다.
망건은 갓 아래 이마에 두르는 망이고, 편자는 망건을 졸라매는 띠입니다.
놀부처럼 편자를 끊어버리면 머리카락이 풀어 흐트러져 봉두난발이 되지요.
"망건편자를 줍는다"는 속담도 있습니다. 아무 잘못도 없이, 옷과 갓이 다 찢기도록 매를 맞고, 땅에 떨어진 편자만 줍는다는 얘기입니다. 날벼락처럼 당한 치욕을 호소할 데도 없는 그 처지가 얼마나 참담하겠습니까.
"이젠 몇 년이었는가. 다리미 아래 와이셔츠같이 당한 그날은…"
시인 천상병이 간첩의 누명을 쓰고 중앙정보부에서 겪었던 치욕스러운 취조와 고문을 되새기며 진실의 승리를 말합니다.
"네 살과 뼈는 알고 있다. 진실과 고통, 그 어느 쪽이 강자인가를"
"살아오며 한 점 부끄럼 없었다"며 세상을 등졌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이 누명을 벗었습니다.
세월호참사 특별수사단이 기무사의 유가족 사찰을 비롯한 열세 가지 의혹에 대해 "근거 없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대통령이 거듭 강력하게 기무사 수사를 지시한 지 2년 반 만입니다.
검찰은 법원 영장심사를 받으러 자진 출석했던 이 전 사령관에게 수갑을 채워 포토라인 앞에 세웠습니다.
구속도 결정되지 않은 사람을 그렇게까지 다룬 이유가 무엇이었겠습니까.
더욱이 법원은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그는 며칠 뒤 이 유서를 남기고 갔습니다.
"내가 모든 것을 안고 가는 걸로 하고 모두에게 관대한 처분을 바랍니다. 육십 평생 잘 살다 갑니다"
이 비인권적 비극을 목도하고도 여권은 끝내 검찰 개혁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검찰개혁은 조국 전 장관 가족이 검찰청에 들어설 때에야 비로소 완성됐습니다.
이 전 사령관은 그저 적폐청산의 상징적 인물로 생을 마감했을 뿐입니다.
시절이 그를 그렇게 내몰았을 뿐이라고 하기엔 우리 모두가 너무 부끄럽지 않습니까?
이제 다시 세월호 특검이 시작됩니다. 또 어떤 결론이 나올지 알수 없습니다만, 세월호 특수단장이 남긴 이 말이 제 가슴을 유난히 묵직하게 두드립니다.
"검사로서 되지 않는 사건을 만들 수는 없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수사했고, 할 수 있는 것은 다했습니다"
그렇다면 언론은 또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이 절박한 화두 앞에서 저 역시 마음이 잘 추스르지지 않는 하루였습니다.
1월 20일 앵커의 시선은 '죽어서 산 이재수' 였습니다.
신동욱 기자(tjmicm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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