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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 (화)

組暴도 탐낸 전문꾼… 떼돈 번 가짜석유王 잡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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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3대 기술자'로 꼽혀

"헐값에 팔면 의심받는다" "외제차·소형차엔 넣지 말라" 적발 피하는 노하우로 '명성'

10개월 도피 끝에 체포

봉천동식구파에 스카우트돼 1100억대 가짜석유 팔다 걸려… 50억대 富 쌓아 호화생활도

"범행 대상으론 '중간급' 차량이 제격이다. 대형·고급 외제차나 소형차는 무조건 피해라. 기름값이 지나치게 싸면 의심을 받을 수 있으니 매주 시세를 분석해 최저가보다 약간 비싸게 책정할 것."

국내 가짜 석유 시장의 '3대 기술자'로 꼽힌다는 김모(47)씨가 거래처 판매원들에게 가르친 내용이다. 수도권 일대 가짜 석유 시장을 장악한 조직폭력배 '봉천동 식구파'와 '업계 큰손' 김모(53·복역 중)씨에게 가짜 석유를 만들어 판 혐의로 지명수배를 받아 온 가짜 석유 제조책 김씨가 10개월간의 도피 생활 끝에 검찰에 붙잡혔다. 가짜 석유는 경유에 등유를 섞거나 정상 석유제품에 용제, 메탄올, 톨루엔 등을 섞은 것으로 차량 연비와 출력을 떨어뜨리고, 주행 중에 엔진 꺼짐 사고 등을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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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검 형사5부(부장 차맹기)는 2009년 6월부터 2011년 3월까지 수백억원대 가짜 석유를 만들어 서울·인천·경기지역 주유소에 팔아넘긴 혐의로 김씨를 지난 20일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검찰 및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씨는 2005년쯤부터 탁월한 노하우와 영업방식으로 소문을 탄 가짜 석유 제조의 달인이다. 김씨는 2009년부터 조폭 봉천동 식구파의 행동대장 김모(43·복역 중)씨에게 스카우트돼 활동했다. 봉천동 식구파는 주유소 19곳에서 1100억원대 가짜 석유를 팔아 세(勢)를 부풀린 조직으로, 지난해 검찰에 의해 일망타진됐다. 검찰은 또 다른 주유소 6곳에서 가짜 석유 112억원어치를 판 '큰손 김씨' 일당도 검거했다. 하지만 이들에게 기름을 만들어 공급한 제조책 김씨는 수사망을 피해 도주하고 있었다.

검찰 조사 결과 김씨는 가짜 석유를 진짜 석유로 둔갑시키기 위해 전문 노하우를 동원했다. 가짜 석유 제조 공장을 야산이나 공터에 감추기보다 차량이 많이 지나다니는 경기 용인 지역에 설치했다. 신(新)도로가 생겨 손님이 끊긴 구(舊)도로 주유소를 헐값에 사들여 공장으로 개조한 것이다. 새벽마다 탱크로리 차량이 지나다녀도 의심받을 일이 없었다고 한다. 김씨는 이런 식으로 정상가보다 35% 정도 싼 가짜 석유를 만들었다.

하지만 김씨는 판매업자들을 상대로 "기름을 무조건 싼값에 팔지 말라"고 교육했다. 최저가로 팔면 주변 주유소의 의심을 살 수 있으므로 매주 시세를 체크해 '적당히 싼 가격'에 팔도록 지시했다. '중간급 차량'만을 표적으로 삼을 것도 강조했다. 김씨는 '마티즈·다마스'같이 출력이 약한 소형 차량은 가짜 석유를 넣었을 때 주행 중에 시동이 꺼지는 이른바 '기름사고'가 빈번하게 일어날 수 있고, 벤츠나 BMW 같은 고급 외제 승용차는 자칫 들키면 큰 비용을 물어줘야 하므로 되도록 진짜 석유를 주입하라고 가르쳤다.

또 진짜 석유와 가짜 석유를 리모컨으로 조작해 주입하는 장치는 고장이 잦은 만큼 차라리 가짜 석유를 묻어놓은 전담 주유구를 만들어 적극적으로 차량을 유도하도록 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씨는 심지어 한국석유관리원의 단속 차량 리스트까지 입수해 주유원들에게 나눠준 것으로 조사됐다"고 말했다.

검찰에 따르면 김씨는 이런 방식으로 2년간 50억원을 챙겼다. 주변 사람들은 김씨가 정선 카지노에서 20억여원을 탕진했으며, 20대 내연녀에게 경기 분당 아파트를 얻어주고 벤츠 차량을 몰고 다니는 등 호화 생활을 했다고 진술했다.

가짜 석유는 생산·유통 과정이 무자료여서 탈세 범죄를 동반한다. 한국석유관리원에 따르면 2005~2009년 가짜 휘발유와 가짜 경유의 탈세액 규모는 모두 8조5636억원에 이른다. 한 해 평균 1조7127억원 수준이다.


[한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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