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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7 (금)

"北대사관 한 곳이 바꿔친 위조 달러 한해 3000만달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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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럽 국가에 근무했던 前 북한 외교관의 고백]

金씨 일가 줄 진상품 구입때 가짜·진짜 달러 3대7로 섞어

北, 카지노·마피아 이용해 '수퍼노트 바꿔치기'

평양서 陸路·海路로 위폐 도착

외교관들, 100장씩 다발로 묶어 주요 도시에 동서남북 흩어져… 은행·환전소 옮겨다니며 교환

주재국 범죄집단과도 친분

급할 땐 마피아에 '반값 달러깡'… 카지노선 5000달러 칩 구입 후 일부만 게임, 나머진 진짜 달러로

북한에 대한 착각

"BDA제재 후 한풀 꺾였다고? 북한을 몰라서 하는 소리… 요즘도 돈세탁에 열심이다"

Chosun

"우리 대사관에서 바꿔치기한 위조 달러가 2010년 한 해에만 3000만달러(약 330억원)어치였습니다."

동유럽 A국에서 북한 외교관으로 근무하다 2011년을 전후해 한국으로 귀순한 B씨는 13일 "북한 외교관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북한산 위폐(僞幣)를 진폐(眞幣)로 바꿔 본국에 보내는 것"이라며 위폐 교환 과정을 자세히 밝혔다.

국가 차원에서 수퍼노트(초정밀 100달러 위폐)를 생산하는 북한은 여러 해외 공관에 수백만~수천만달러씩의 위폐를 배분해 진폐로 바꿔치기하는 임무를 부여해 왔다고 B씨는 말했다. 북한 외교관 출신의 탈북자가 수퍼노트 교환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B씨는 "매년 특정 시기에 해로와 육로를 통해 특수가화폐(일명 '특가'·수퍼노트를 의미)가 도착한다"며 "대사관에 근무하는 공작원이 시내 아지트에 가서 '특가'가 담긴 박스들을 가져온다"고 말했다.

수퍼노트가 도착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1만달러 단위(100장씩)로 묶는 작업이다. B씨는 "2010년에는 직원 두 명이 3000만달러를 묶는 데 꼬박 닷새가 걸렸다"고 했다. 돈다발 묶기가 끝나면 본격적인 '교환 작전'에 들어간다. 교환 임무를 부여받은 외교관들은 각자 할당받은 '특가'를 들고 주재국의 주요 도시로 흩어져 바꿔치기를 시작한다.

B씨는 "바꿔치기 과정에서 간혹 적발될 때가 있고, 나라마다 위폐 사범에 대한 처벌 수위가 다르다"며 "북한 당국은 이런 부분까지 상세히 파악해 교환 임무를 받은 외교관들에게 숙지시킨다"고 했다.

은행에서 주재국 화폐로 교환할 때는 욕심을 부리지 않도록 교육받는다. B씨는 "A국에선 위폐를 바꾸다 적발될 경우 2000달러 이상이면 현장에서 체포된다"며 "1999달러까지는 적발되더라도 돈만 압수당하고 풀려나기 때문에 1900달러씩 교환하는 게 요령"이라고 했다. 이렇게 바꾼 주재국 화폐를 다른 은행이나 환전소에서 다시 미 달러화 진폐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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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폐를 바꾸러 출장 간 지역에 오랫동안 머물러서도 안 된다. B씨는 "주요 도시마다 동서남북 등 4개 권역으로 나눈 뒤 장소를 옮겨가며 교환하는데 한 권역에 최장 6일까지만 머문다"며 "일주일 이상 한 지역에서 교환하면 꼬리가 잡힐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카지노도 북한 외교관들이 위폐 바꿔치기를 위해 자주 활용하는 장소다. B씨는 "카지노에 들어가 보통 5000달러어치의 칩을 구입하고 실제 게임은 200~300달러어치만 즐긴다"며 "두 시간 정도 시간을 보내다 나오면서 칩을 다시 달러(진폐)로 바꾼다"고 말했다.

◇위폐 교환 위해 마피아 동원도

위폐 교환을 위해 평소 마피아 같은 주재국의 범죄 집단과도 친분을 쌓아둬야 한다. B씨는 "제값을 못 받고 40~50% 싸게 (위폐를) 넘겨야 하지만 급하게 수백만달러의 뭉칫돈을 교환해야 할 때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북한 외교관들은 태양절(김일성 생일·4월 15일)과 광명성절(김정일 생일·2월 16일)을 앞두고 매년 진상품 수십만~수백만달러어치를 북한에 보내는데 이때도 바꿔치기가 이뤄진다. B씨는 "경험상 진폐와 위폐를 7 대 3 비율로 섞어 구입하는 게 안전했다"고 했다.

수퍼노트 바꿔치기 작업은 '특가'가 도착한 후 통상 1~2개월 이내에 마무리된다고 한다. B씨는 "'특가 교환' 임무는 1년 내내 있는 게 아니고 평양에서 돈이 필요할 때마다 부여되기 때문에 시일을 맞추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교환된 진폐는 30% 정도만 평양에 보내고 나머지는 바꿔치기 과정에 필요한 로비 자금이나 대사관 운영 경비로 사용한다.

일각에선 북한의 수퍼노트 생산·유통이 2005~2006년 마카오 은행 방코델타아시아(BDA)에 대한 미국의 금융 제재를 계기로 한풀 꺾였다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B씨는 "그것은 북한을 몰라서 하는 소리"라며 "주요국에 주재하는 북한 외교관들은 요즘도 특가 교환에 열심이다"고 말했다.

북한 내부 사정에 정통한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작년 12월에도 동유럽 A국 등에 수퍼노트 교환 임무를 부여했다고 한다. 이 소식통은 "올해 김일성 생일용 진상품들을 실어갈 북한 특별기가 4월 초에 A국 공항에 들어오는데 이 비행기 편에 교환한 진폐를 실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안보리 결의 "북 외교관 감시 강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지난 7일 대북 제재 결의 2094호를 채택하며 북한 외교관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내용(24항)을 포함시킨 것도 북한 외교관들의 수퍼노트 바꿔치기 관행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외교 소식통은 "북한 외교관들이 수퍼노트 외에도 마약, 가짜 담배·술 등의 밀매에 관여해왔다는 것은 상식에 속한다"며 "이제 국제사회가 이런 관행에 대해 경고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보면 된다"고 했다.

북한은 1980년대부터 미국 달러화를 위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스위스제 고성능 인쇄기와 보는 각도에 따라 색이 달라지는 특수 잉크 등을 수입해왔다.

북한 외교관 출신 탈북자 G씨는 "초창기엔 달러 용지를 구하지 못해 1달러 지폐를 특수 용액으로 지운 뒤 100달러 지폐로 만들었다"며 "그러나 이제는 각종 위조 방지 장치를 전부 따라 하는 수준으로 진화했으며 6개월마다 위폐의 결점을 보완하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 유통 중인 북한산 수퍼노트가 어느 정도 규모인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미국 공화당의 에드 로이스 의원은 2007년 미 재무부 비밀조사국 자료를 인용, "미 당국은 1989년 이후 지금까지 북한에서 제조한 것으로 추정되는 5000만 달러 상당의 수퍼노트를 적발했다"며 "수퍼노트 제작에 따른 이익은 연간 1500만~2500만달러"라고 했다. 그러면서 "북한 정권은 히틀러 이후에 타국의 화폐를 위조한 첫 번째 나라"라고 말했다.



☞ 수퍼노트(supernote)

‘굉장한, 특별한’이라는 뜻의 super와 ‘지폐’를 뜻하는 note의 합성어. 북한이 만든 100달러짜리 위폐를 뜻한다. 미국 조폐국이 사용하는 잉크와 고성능 인쇄기를 이용해 만들며 위폐 감별기를 통과할 정도로 정교하다.


[이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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