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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고3·중3 학생 30% 접속에도, EBS 서버 마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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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세상]

- 초유의 온라인 개학 첫날 '혼선'

교사 실수로 영상 끊기고 안나와… 2배속으로 몰아본뒤 학원공부도

수업 시작전 휴대폰 들고 나가 야외서 산책하며 "출석체크요"

카메라 천장으로 돌려놓고 딴짓… 교사는 학생들이 뭐하는지 깜깜

9일 오전 10시쯤 서울 동작구의 한 아파트에서 고교 3학년 최모(18)양이 모자 달린 티셔츠 차림으로 3교시 한국지리 동영상을 시청하고 있었다. 화면 안 교사는 "한국지리는 지금 시작해도 문제없으니 걱정 말고 따라와 달라"고 했다. 최양이 재학 중인 학교는 이날 6교시 수업에서 사전 녹화 강의와 과제 학습을 병행했다. 교사가 학생들과 영상으로 대화하는 실시간 수업은 없었다. 6교시 수업을 마친 최양은 "내일부터는 학교 수업 영상은 2배속으로 재생해 오전에 다 몰아 듣고, 오후에는 학원 인터넷 강의를 듣기로 했다"고 했다.

조선일보

전국 고3, 중3 학생 85만여명을 대상으로 온라인 개학이 시작된 9일 오전 서울 마포구 서울여자고등학교 내 3학년 교실에서 한 교사가 텅 빈 교실에 앉아 노트북으로 학생들과 온라인 수업을 하고 있다. /고운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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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로 사상 처음 도입된 '온라인 개학'이 9일 전국 고3과 중3 학생 86만명을 대상으로 시작됐다. 16일에 고1·2학년, 중1·2학년, 초등4·5·6학년, 20일에는 초등1·2·3학년이 개학하면 전국 540만 초·중·고교생이 원격 수업으로 신학기를 맞는다.

◇학생 30% 몰렸는데 EBS 접속 오류

고3과 중3 학생만 개학한 9일 오전 EBS 온라인 클래스가 75분간 접속이 안 되는 등 문제가 발생했다. EBS 온라인 클래스는 교사들이 온라인으로 학급을 만들고 강의 영상이나 학습 자료 등을 올릴 수 있는 학습관리시스템이다. 온라인 개학 준비가 제대로 안 된 학교들은 EBS 온라인 클래스를 이용해서 수업을 진행했는데, 문제가 생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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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온라인 개학 첫날 EBS 온라인 클래스에 접속한 학생을 26만7280명으로 추산했다. 고3과 중3 전체 학생 86만명의 30%만 몰렸는데 접속 문제가 생겼다. 앞서 교육부는 EBS 온라인 클래스 서버를 증설해 동시 300만명이 접속할 수 있도록 했다고 밝혔었다. 이번에 EBS 측은 병목현상이 일어나 시스템 오류가 생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충남의 한 고교 교사는 "오전 9시에 출석 현황 확인하러 EBS 로그인을 하는데 하얀 화면만 뜨고 접속 오류가 계속됐다"며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접속에 성공했다"고 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고1·2학년, 중1·2학년, 초등4·5·6학년이 동시 개학하는 16일에 더 큰 혼란이 벌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진짜 공부는 학원에서

이날 원격 수업에 처음 참여한 고3 수험생들은 교실 수업보다 집중하기 어렵다며 불안해했다. 서울 강남의 한 고3 학생은 "정시(수능)를 노리는 친구들은 이런 수업이 시간 낭비라며 틀어만 놓고 다른 공부 한다고 얘기한다"며 "수시 준비하는 경우는 수업 태도가 불량하면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에서 불이익이 걱정돼 열심히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고 했다. 이 학교의 한 수업 영상은 교사 실수로 소리가 들리지 않고 영상이 끊겨 학생들이 불편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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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양천구의 한 중학교 학생은 "오늘 음악·사회·국어·수학을 들었는데 강의 시간이 20분가량이어서 4교시를 들었는데도 실제 공부 시간은 2시간에 불과했다"며 "오전에 메뉴를 잘못 눌러서 로그아웃됐는데 그 뒤로 접속이 안 돼 1시간 동안 수업을 못 받았다"고 했다.

상당수 학교는 실시간 쌍방향 수업 대신 EBS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교사들이 수업 공개를 꺼리기 때문이다. 경기도의 한 고교 교장은 "1년에 한두 번인 공개 수업도 부담스러워하는 교사가 대부분이어서 실시간 강의는 물론 수업 녹화도 꺼려 한다"고 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내가 찍은 영상이 악용될 가능성도 있고, 흠 잡힐 수 있다는 걱정도 많아 과제 중심 수업으로 가고 있다"고 했다.

◇수업 태도 확인 어려워

이날 첫 온라인 정식 수업을 치른 교사들은 "막상 해보니 학생의 수업 태도를 확인하기 어려웠다"며 "학부모가 수업 내용들을 확인하고 평가하는 점도 부담스럽다"고 호소했다. 서울의 한 고교 온라인 조회 시간에는 한 학생이 집 밖을 산책하며 스마트폰으로 화상 회의 프로그램에 접속해 출석에 응했다. 다른 학생들이 책상에 앉아 고정된 화면인 반면, 이 학생 화면은 가로수와 건물 등이 번갈아가며 채우고 있었다. 어떤 학생은 자신의 카메라를 꺼놓거나, 천장을 향하게 한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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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총은 이날 "정보통신(IT) 강국이라는 자부심은 교육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음이 이번 온라인 개학을 맞아 여실히 드러났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대비하고 디지털 교육, 정보화 교육을 강조하면서 정작 온라인 시스템조차 제대로 구축하지 못한 현실에 대해 성찰이 필요하다"고 했다.



[곽수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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