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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철 칼럼] 두 번째 기적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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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방역 성과로 전 세계 주목

다가올 경제위기도 반드시 이겨내야

기업 개인의 ‘배려와 연대’ 실천 기대
한국일보

대구 자영업자들이 25일 대출을 받기 위해 대구 북구 소상공인진흥공단 앞에서 번호표를 받기 위해 줄얼 지어 기다리고 있다. 김민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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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가 한국을 바이러스 취급하던 게 불과 한 달 전이었다. 대구경북을 중심으로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한국은 순식간에 가장 위험하고 혐오스러운 나라가 됐고 각국이 문을 닫아걸기 시작했다. 어떤 나라는 신혼여행 온 부부들을 공항에서 막아버렸고, 어떤 나라는 입국해있던 여행객들을 내보내기 위해 자비로 전세기를 띄웠다. 우방 같은 건 없었다. 외교부장관이 항의도 하고 읍소도 했지만 전혀 먹히질 않았다. 이 때 국민들이 받았던 모멸감과 배신감이란.

한 달이 지난 지금 한국은 전혀 다른 나라가 됐다. ‘바이러스의 나라’에서 ‘항(抗)바이러스 나라’, 전 세계에서 코로나와 가장 잘 싸우는 나라가 됐다. 세계 언론들은 한국의 대처방식을 앞다퉈 조명했다. ‘드라이브 스루’하면 이젠 맥도널드 보다 한국을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지도 모른다. 각국 의회는 자국 정부를 상대로 ‘왜 한국처럼 못하나’고 질타하고, 몇몇 나라는 진단키트를 구하려고 군용기까지 급파했다. 미국 대통령이 한국 대통령에게 물건(진단키트) 좀 보내달라고 부탁하는 현실을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이런 성과는 마침내 G20 화상정상회의 개최로 이어져 향후 국제공조에서 우리나라는 외교적 이니셔티브까지 쥐게 됐다. 이런 드라마틱한 반전이 또 있나 싶다. 4월6일 개학 이후 상황이 걱정스럽지만, 적어도 현재까지 우리나라는 ‘방역의 기적’을 썼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제 또 한번의 기적이 필요한 상황이다. 코로나가 안겨준 첫 번째 공포가 감염의 공포라면, 두 번째 공포는 추락의 공포다. 폐업 파산 실직 그리고 이어질 우울증, 가족의 붕괴, 어쩌면 있을 지 모를 극한 선택들. 많은 동네 상인, 영세 기업주, 노점상, 일용직 노동자들은 지금 감염이나 격리와는 차원이 다른 생존의 공포를 느끼고 있다. 과연 우리나라는 방역뿐 아니라 생존의 성공까지 이뤄낼 수 있을까.

사실 방역의 기적이 100% 시스템의 승리는 아니었다. 빠른 진단과 현미경 같은 동선 파악, 환자 관리 등 정부가 구축한 방역체계는 훌륭했지만 만사 제쳐두고 현장으로 달려간 의사와 간호사들, 차출된 공무원들을 대신해 팔을 걷어붙인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이 없었다면 방역시스템은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을 것이다. 마스크대란이 그나마 진정된 건 공급이 해결되어서가 아니라, 아껴 쓰고 나눠 쓰면서 불편을 기꺼이 감수한 시민의식 덕분이었다.

경제도 그렇다. 많은 경제위기를 겪어 본 터라 정부는 아마도 어떤 정책 수단을 동원해야 할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정부 정책만으론 이 고비를 넘길 수 없다. 기업 개인 등 다른 경제 주체들도 필요한 일을 해야 한다.

우선 기업들은 할 수 있는 한 해고를 자제했으면 한다. 나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너무도 경직되어있고 이대로 두면 한국 경제의 미래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지금은 유연성보다 배려와 고통분담이 먼저여야 한다고 믿는다. 이런 상황에서 직장을 잃는다면 대체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정부는 고용 유지를 위해 기업들이 원하는 것, 그게 규제완화든 보조금이든 뭐든 다 들어주고 대신 기업은 가급적 해고를 자제하길 바란다. 노동자도 정규직이 더 희생하고 파업은 최대한 자제해야 할 것이다. 노사정이 이런 내용을 함께 선언하는 것도 좋다고 본다.

개인도 여유가 있으면 평소보다 좀 더 소비하고 좀 더 기부했으면 한다. 만약 생활 여유가 있는 데 재해소득으로 얼마를 받게 됐다면 기꺼이 기부해도 좋겠다.

우리는 IMF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등 위기에 꽤 익숙하다. 두 번 모두 조기 탈출 성공을 자찬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실직자가 양산되고 가정이 해체되고 목숨을 끊은 아픔은 애써 잊으려 한다. 이번엔 IMF 때와는 다르게, 이런 고통을 어떻게든 덜 겪으면서 위기를 넘겼으면 한다. 방역의 기적에 이어 생존의 기적을 기대한다. 바이러스와의 싸움에서 보여준 배려와 연대가 경제 위기와의 싸움에서도 빛을 발했으면 한다.

콘텐츠본부장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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