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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1 (토)

이슈 성착취물 실태와 수사

1심 징역형→ 2심 집유…‘아동성착취물 제작’ 사안 따라 양형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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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사건 판결 보니

피해자 합의했다고 감형

‘무기징역 또는 5년 징역’ 법 규정 있지만 기준 없어

소지자 선고 형량도 차이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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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바 ‘텔레그램 n번방’ 사건이 파문을 일으키면서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제작·유포·소지한 사람을 강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하고 있다. 관련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법원이 어느 정도의 형량을 매겼는지, 형을 깎아줄 땐 어떤 이유를 댔는지 판결을 분석해봤다.

재판부들은 형량을 정할 때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의 해악이 심각하다는 점은 인정했다. 피해자의 피해뿐만 아니라 사회에 아동·청소년에 관한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재판부는 “아동·청소년을 상대로 한 다른 성범죄를 유발할 가능성도 있고, 언제라도 무분별·무차별적으로 복제될 수 있기 때문에 위험성이 크다”고 했다.

해악에 비하면 처벌 수위는 높지 않았다.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은 성착취물 제작에 대해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 유기징역을 규정하지만, 소지는 1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이다.

P2P 파일 공유 프로그램을 이용해 아동·청소년 영상 8개를 배포하고, 컴퓨터에 아동·청소년 사진 2664개를 저장해둔 ㄱ씨는 벌금 300만원을 받았다. 전용 프로그램으로만 접속할 수 있는 다크웹 방식의 아동·청소년 성착취물 전용 사이트에 파일을 업로드하는 방법으로 282회 배포하고, 1128회 소지한 혐의를 받은 ㄴ씨는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이었다. 음란물 사이트를 운영하면서 아동·청소년 성착취 영상 10개를 게시하고 성인용품 판매 사이트 운영자들로부터 매월 일정액의 광고비를 받은 혐의 등으로 기소된 ㄷ씨는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3년이었다.

아청법상 제작·유포·소지 관련 범죄는 양형기준이 없다. 장윤미 변호사는 “영상 제작·소지가 피해자에게 물리적으로 고통을 주진 않았다는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는 것 같다”며 “음란물에 대한 관용적인 분위기도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법원은 성착취물 제작 과정에서 피고인이 피해자를 협박했는지,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했는지를 형량 결정에 고려했다. 아청법은 피해자가 성착취물 촬영에 협조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제작하면 처벌하게 돼 있다. 재판에서는 촬영에 협조했을 경우 형량이 감경됐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면 피고인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인터넷에서 13세 피해자에게 접근해 영상과 사진을 촬영하게 하고 휴대전화로 전송받은 혐의 등을 받은 ㄹ씨는 1심에서 징역 2년6월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으로 바뀌었다. 2심은 음란물 제작 과정에서 ㄹ씨가 피해자를 협박하거나 위력을 행사하지 않았고, 합의금을 지급했으며 피해자도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신진희 변호사는 “요즘 청소년들은 사진 찍기에 거부감이 없고 사진이 어떻게 이용될지도 몰라 신체 사진을 보내는 것”이라며 “피해자가 13세 미만인 때는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비자발적인 행위로 간주해야 한다”고 했다. 영상에 피해자 신원이 드러나지 않았거나, 곧바로 영상을 삭제한 경우 감경 요인으로 반영한 재판부도 있었다. 성착취물 유포 혐의를 받은 피고인에게는 “직접 음란물을 제작하거나 몰래 촬영한 것은 아니고 인터넷에 올라온 기존 자료를 배포·전시했다” “제3자로부터 구입한 음란물”이라는 점이 유리한 사정이 됐다.

아청법에는 피해자가 스스로 촬영하도록 유인한 행위, 소위 ‘그루밍(grooming)’은 처벌하는 조항이 없다. 그렇다보니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한 사례들이 더러 나온다. 아동복지법은 아동에게 음란한 행위를 시키거나 이를 매개하면 처벌한다고 규정한다. 인터넷에서 만난 17세 피해자와 주종관계를 맺고 영상통화로 특정 자세를 보여달라는 요구 등을 하다가 오프라인으로까지 범행이 이어진 ㅁ씨 판결이 그 예다. ㅁ씨는 피해자를 만나 성적 행위를 시키고 휴대전화로 촬영했다. 아청법상 음란물 제작·배포와 함께 아동복지법상 아동에 대한 음행강요·매개·성희롱 혐의가 적용돼 징역 4년이 선고됐다.

이혜리·유설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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