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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4 (금)

‘레이디’ 남기고, 미국 컨트리팝 대부 케니 로저스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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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키·흰수염 70~80년대 아이콘

중앙일보

케니 로저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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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여년 간 공연 무대와 브라운관을 오가며 ‘레이디’(Lady)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미국 컨트리팝의 대표 가수, 케니 로저스가 20일(현지시간) 별세했다. 81세.

A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로저스 유족 측 대변인은 이날 성명을 통해 “로저스가 조지아주 샌디 스피링스 자택에서 노환으로 숨졌다”고 밝혔다.

1938년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태어난 로저스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1956년 고등학교 재학 당시 밴드 ‘더 스칼러스’를 결성하며 음악 활동을 시작했고, 28살이던 1966년 포크 그룹인 ‘뉴 크리스티 민스트렐스’에 합류하며 전환점을 맞았다. 이 그룹 해체 후 솔로 활동을 시작한 로저스는 1977년 발표한 컨트리 발라드곡 ‘루실’로 첫 그래미상을 받으며 본격적인 스타로 거듭났다.

허스키한 목소리와 흰 수염이 트레이드 마크인 로저스는 1978년 ‘더 갬블러’(The Gambler)로 또 한 차례 그래미상을 거머쥐었고, 이후 ‘카워드 오브 더 컨트리’ 등의 노래를 히트시키며 1970~80년대 컨트리팝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국내에서도 광고 음악 등으로 쓰이며 널리 알려진 ‘레이디’는 1980년 빌보드 메일 싱글 차트인 ‘핫 100’에서 6주간 1위를 지킨 그의 대표곡이다. 1983년에는 미국 컨트리 뮤직의 대모 돌리 파튼과 듀엣으로 부른 ‘아일랜즈 인더 스트림’(Islands in the Stream)으로 또다시 빌보드 핫 100 1위를 차지했다. 로저스는 국내에서도 7080 올드팝 세대에게 진한 향수를 남기는 가수로 인기가 높았다. 1989년 첫 내한공연을 시작으로 1998년까지 수차례 한국을 찾아 국내 팬들을 직접 만나기도 했다. 2012년에도 올림픽홀에서 내한 공연을 계획했지만, 국내 공연기획사 사정으로 취소됐다.

로저스가 남긴 앨범은 65개가 넘는다. 판매된 음반은 총 1억2000만 장. 그래미상을 세 차례 수상한 것을 비롯해 피플스 초이스 어워드,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컨트리뮤직 아카데미상, 컨트리뮤직 협회상 등 100개가 넘는 상을 받았다. 1985년엔 아프리카를 돕기 위해 당대 최고 음악인들이 함께 만들었던 자선 노래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에도 참여했다. 사진 촬영에도 관심을 가져 관련 책을 출간했고, 자신의 이름을 딴 치킨 체인 브랜드 ‘케니 로저스 로스터’를 창업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배우로도 활동했다. 1978년 발표한 자신의 히트곡 ‘더 갬블러’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동명의 TV 영화 시리즈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그는 2015년 고별 투어를 선언했으며 건강 문제로 2018년에 남은 투어 공연을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2017년 10월 미국 내슈빌에서의 콘서트가 그의 마지막 공연이 됐다. 유족으로는 다섯 차례 결혼해 얻은 다섯 자녀가 있다. 유족 측은 “코로나19 우려로 소규모 장례식을 치를 것”이라고 밝혔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m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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