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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하면 떠오르는 음식들이 있다. 비 오는 날이면 막걸리에 전이, 약주에는 육류 요리가, 소주에는 얼큰한 국물 요리가 자연스럽게 생각난다. 한식이 전통주에 어울리는 이유는 우리 음식 역사를 공유하면서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양한 외국 음식의 확산과 음식 소비 패턴의 변화로 개인의 안주 취향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지중해식 요리, 중식, 태국 음식 등을 먹으면서 전통주를 마시는 이들이 늘고 있다. 하지만 전통주는 한식에만 잘 맞는다는 고정관념을 깨기에는 충분했지만, 단단하게 굳어진 소비자들의 생각을 완전히 없애기엔 역부족이었다.
개인적으로 ‘막걸리에 어울리는 치즈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 있다. 호기심에 테이스팅했었다. 외국에서는 술을 거창한 요리가 아닌 치즈, 초콜릿 그리고 빵 등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핑거 푸드와 함께 마시는 경우가 많다. 와인은 치즈, 위스키는 다크초콜릿이 맛의 조합이 좋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 막걸리를 발효식품인 치즈와 먹는다면 재미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브리, 그라나 파다노, 고르곤졸라 등 우리에게 익숙한 치즈와 함께 일반 막걸리와 고급 막걸리 등을 시음했었다. 브리는 향이 약한 막걸리와 어울린다면 감칠맛이 강한 그라나 파다노는 신맛이 나는 막걸리와 찰떡궁합이었다. 단맛과 향이 강한 막걸리는 고르곤졸라 치즈와 짝꿍이었다. 불협화음을 낼 거 같던 막걸리와 치즈의 조합은 뜻밖에 시너지를 내서 매우 흥미로웠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일반 매장 판매로 이어지는 데는 아쉽게도 한계가 있었다.
음식을 먹는 일은 인간에게 중요한 행위이다. 가장 큰 기능은 우리가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는 것이고, 다음은 음식을 통해 즐거움을 만끽하는 것이다. 과거에는 전자가 중요했지만, 지금은 후자가 대세다. 음식의 영양학적인 역할을 강조할 때는 음료조차도 음식 섭취를 돕는 보조 도구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미식이 강조되는 지금은 술을 포함한 음료가 음식과 어떻게 맛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느냐가 중요해졌다.
술과 음식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마리아주’(mariage)다. 마리아주는 마실 것과 음식의 조합을 말한다. ‘고기에는 레드 와인’ ‘생선에는 화이트 와인’이 마리아주의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마리아주 대신에 ‘페어링’(pairing)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마리아주에는 국경이 없다. 막걸리에 치즈를 안주 삼아 먹는 시도는 전통주 발전에 매우 중요하다. 이미 오래전부터 와인 업계와 사케 업계는 마리아주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어울릴만한 한식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왔다.
다양한 전통주와 어울리는 음식을 찾는 일은 생산자의 몫이기도 하지만. 주점의 역할도 있다. 찾아낸 조합을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일은 주점 주인들의 의무다. 최근 영업이 어려운 외식업의 고통을 전통주 마리아주로 헤쳐 나가면 어떨까. 맥주나 소주만 판매하는 업소와는 확실히 다를 것이다.
글 이대형(경기도농업기술원 농업연구사·전통주갤러리 자문위원), 사진 박미향 기자 m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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