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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파요”… 군인 정신건강이 위험하다 [박수찬의 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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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은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에 시달리는 장병을 대상으로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나 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게티이미지


군 복무를 마친 사람이라면 병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은 경험을 갖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민간 사회에서는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나 여가 생활을 즐기는데 필요한 수단이 많지만, 병영에서는 마땅한 방법을 찾기 힘든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장병들 중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는 것도 장병들이 스트레스와 정신건강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증거다.

군 당국도 스트레스와 정신건강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다양한 조치를 취하고 있다. 이에 따라 극단적 선택을 하는 병사의 수는 꾸준히 감소하는 추세다. 하지만 간부 자살률은 지난 5년 동안 병사보다 높은 상황이다. 군 간부의 스트레스와 정신건강 관리는 부대 운영 등 전투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방개혁 2.0에 따라 군 조직이 간부와 군무원 위주로 재편되는 만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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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육군 병사가 보급물자를 싣고 접근하는 CH-47 헬기의 비행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군 특수환경이 스트레스 초래

한국국방연구원(KIDA)이 최근 발간한 ‘군 자살률 분석, 예방의 첫걸음’과 ‘군 간부의 스트레스 요인과 정신건강’ 보고서에 따르면, 2012~2016년 10만명 당 병사 자살률은 2012년 11.1명, 2013년 15명, 2014년 12명, 2015년 6.9명, 2016년 6.4명로 감소 추세다. 반면 간부 자살률은 2012년 17명, 2013년 15.9명, 2014년 10.2명, 2015년 16명, 2016년 14.7명으로 병사보다 훨씬 높았다. 2017~2019년 통계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이와 유사한 결과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간부들이 겪는 스트레스가 심각한 수준이라는 점을 시사한다. 생명을 해치는 무기를 다루는 간부들은 직무수행 과정에서 일반 직장인보다 높은 스트레스에 직면한다. 잦은 근무지 이동으로 업무 연속성과 대인관계 유지가 어려운 점도 스트레스 요인이다. 절대적인 상명하복과 조직 가치를 우선하는 군대 문화, 열악한 근무 여건과 과도한 업무, 출신이나 성별에 따른 차별, 진급 문제 등도 간부들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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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 과학화훈련장(KCTC)에서 한 장병이 소총을 든 채 전방을 바라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잦은 근무지 이동과 격오지 근무는 간부의 일상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자녀 교육 등의 문제로 가족과 별거하면 가족간 유대관계 단절로 인한 스트레스가 발생한다. 배우자의 부재로 인한 ‘독박 육아’와 생활비 증가 등의 문제에 따른 정신적 부담도 크다.

자녀의 일탈 가능성이 높아질 우려도 있다. 2012년 11월 공개된 미국 로스앤젤레스 소재 대학인 USC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 군인 자녀 중 21%는 자살 계획을 세운 적이 있고 18%는 실제 실행에 옮겼다. 특히 군인의 해외 파병으로 인한 가정 내 부재에 따른 영향이 두드러졌다. 해외 파병 경험이 없는 군인 자녀는 18%만 자살을 고려했다고 답했으나 1번 파병됐던 군인 자녀는 23%, 두 번 이상 파병된 군인 자녀는 25%가 자살을 생각해봤다고 응답했다.

우리나라는 해외 파병이 증가하고 있고, 격오지 근무 간부가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별거하는 자녀의 일탈은 간부에게 또다른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미국과 유사한 문제가 발생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이다.

간부들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원인을 단순화하기가 어렵다는 점은 또다른 문제다. 장교와 부사관연령은 20~50대에 걸쳐 있다. 각자가 처해있는 환경이 다른 만큼 스트레스 원인도 다양하다. 간부의 정신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스트레스 요인이 복합적이라는 점을 짐작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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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해병대원들이 시가지 전투훈련 도중 건물 진입 절차를 익히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정신건강 언급해도 불이익 없는 풍토 필요

군 당국은 장병 정신건강 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육군은 간부 전담 병영생활전문상담관을 늘리고 2020년대 초반까지 초급간부에 대한 상담을 의무화할 방침이다. 또 간부는 반기 2시간 이상, 병사 분기 2시간 자살예방 교육을 반드시 받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간부들이 정신건강 문제로 도움을 청하는 것은 쉽지 않다. 군대는 강인한 육체와 정신을 요구하는 조직이다. 그런 군에서 정신건강 문제를 드러내면 자신의 군 경력에 오점이 생기거나 겁쟁이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실제로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에 참가했던 미군 중 상당수는 외상 후 스트레스 증후군(PTSD) 증세를 보였지만 ‘낙인 효과’를 우려해 자신의 증상을 인정하지 않거나 치료를 거부했다.

2011년말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서 발생한 노숙자 연쇄 살인사건 범인이었던 이츠코아틀 오캄포는 이라크전 참전 해병대원이었다. 이라크에서 돌아온 뒤 환청과 환각에 시달린 오캄포는 이라크에서 함께 싸웠던 전우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상태가 더 나빠졌으나 정신과 치료를 받으라는 가족들의 권유를 거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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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물 남용은 장병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게티이미지


우리 군도 미군과 유사한 문제가 잠재되어 있다. KIDA의 ‘2018 병영생활 적응연구’에 따르면, 군 내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 저해요인으로 ‘나의 심리적 문제를 다른 도움 없이 내 스스로 해결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응답이 전체 응답자 1만163명 중 26%인 2638명에 달했다.

‘전문적인 치료를 받는 것은 최후의 방법이 되어야 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16%인 1638명, ‘따로 시간을 내는 것이 어렵다’는 응답은 전체의 14%인 1446명이었다. ‘지휘관이 나를 다른 부대원들과 다르게 대할 것 같다’ ‘내 경력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 같다’는 응답도 각각 1435명(14%)과 1380명(14%)으로 나타났다.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공개하면 장기복무나 진급 심사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와 근무 환경 및 과중한 업무 등으로 치료받을 여유가 없다는 인식이 작용한 결과로 해석된다.

전문적 상담이나 치료를 회피하는 것은 부대원, 가족과의 관계에서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 미군의 경우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 참전 이후 PTSD로 인한 환청이나 환각에 시달리면서도 치료를 거부해 강제 전역, 이혼, 약물 및 도박중독 등을 겪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군의 정신건강 서비스를 제대로 활용하지 않은 채 개인적으로 우울증치료제, 마취제, 진정제, 향정신성의약품 등을 처방받을 위험도 있다. 격무로 치료에 시간을 내기 어렵고, 병원과 멀리 떨어진 격오지 부대가 많은 복무 환경과 ‘낙인 효과’에 대한 우려로 주변에 알리지 않은 채 병원에서 약을 처방받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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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 장병들이 해상훈련 도중 교신과 신호를 주변에 보내고 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진찰을 거쳐 약을 합법적으로 처방받아도 사회와 분리된 군의 특성상 의사의 사후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약물이 남용될 우려도 있다. 우울증 치료제는 남용하면 자살충동을 일으키거나 폭력적인 행위를 유발할 수 있다. 군 내 사고로 이어질 위험이 늘어나는 셈이다.

이라크전에서 미군은 각성제와 우울증 치료제, 진정제 등의 남용 문제에 직면했다. 이라크나 아프간에 파병되는 미군은 180일분의 약을 처방받았다. 문제는 파병 이후에는 사후관리가 안된다는 점이다. 미군 장병들은 자신의 약을 동료에게 줬으며, 스트레스가 심하면 입에 마구 털어 넣었다. 공군 조종사들은 장시간 비행에 따른 피로를 이겨내기 위해 각성제를 의사 처방보다 많이 먹었다. 이는 과다행동, 환각, 초조 등의 증세로 이어진다.

우리 군은 병사 위주였던 조직구조를 간부 중심으로 재편하는 국방개혁 2.0을 추진중이다. 그만큼 간부의 역할과 비중이 중요해지는 셈이다. 간부들이 남몰래 겪는 스트레스와 정신적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주려는 노력이 필요한 이유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장병 외출과 외박, 휴가, 면회가 통제되면서 병사 관리를 책임지는 간부들의 스트레스가 더욱 높아질 우려가 적지 않다. 정신건강 유지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문제가 있다”고 낙인을 찍는 대신 당사자의 군복무와 일상생활에 도움을 주는 전우애와 이를 뒷받침할 문화를 만드는 혁신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국방개혁 2.0이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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