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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디센터 스냅샷]준비되지 않은 자에게 기회가 오면 생기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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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했던 채굴형 암호화폐 거래소의 몰락···거래소 스스로 "준비 부족했다" 인정


누군가 “지난 2018년 하반기 암호화폐 시장을 달궜던 키워드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채굴형 거래소”라고 답하고 싶다. 당시 채굴형 거래소 열풍을 생생히 기억하기 때문이다.

2018년 8월 어느 날 오프라인 암호화폐 결제를 체험해봤다. 이날 이더리움 전송 속도가 유달리 느렸고, 계산대 앞에서 한 시간을 넘게 가만히 기다려야 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이유를 알아봤고, 이더리움 네트워크 병목현상 사태를 일으킨 장본인이 에프코인(Fcoin)이라는 암호화폐 거래소인 것을 알아냈다.

에프코인은 사용자가 비트코인 또는 이더리움으로 지불하는 거래 수수료를 FT라는 자체 암호화폐로 환급해주는 정책을 펼쳤다. 거래를 많이 할수록 FT를 많이 받는 이 행위를 ‘트레이딩 마이닝(채굴)’이라 칭했다. 여기에 더해 에프코인은 FT 보유자에게는 보유 비율에 따라 거래소 수익의 80%를 배당해준다는 파격적인 조건을 제시했다. 쓴 만큼 돌려주고, 배당은 덤이라는데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에프코인으로 인해 이더리움 및 기반 토큰의 전송량이 폭증했고, 결국 전송 수수료 인상과 네트워크 병목현상으로 이어졌다.

에프코인의 성공을 본 국내 암호화폐 거래소들도 채굴형 모델을 도입했다. 대표적인 곳이 코인제스트다. 코인제스트는 에프코인과 비슷한 시기 코즈(COZ)라는 자체 암호화폐를 발행하고, 채굴과 수익 배당을 진행해 큰 인기를 얻었다. 당시 코인힐 기준 국내 거래량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한때 대세였던 채굴형 거래소들의 현재 모습은 가관이다. 코인제스트는 자금난으로 인해 원화 및 일부 암호화폐 출금을 멈췄고, 에프코인은 출금 정지와 함께 서버 운영도 잠정 중단했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된 이유는 ‘준비 부족’ 그리고 ‘욕심’ 때문이다.

거래소도 스스로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까지 만들었는지 잘 알고 있다. 장지엔(ZhangJian) 에프코인(FCoin) 대표는 지난 17일 공지사항에 장문의 글을 게재했다. 글에서 그는 거래소 오픈 당시 전산 시스템을 비롯한 모든 것이 부족했다고 시인했다. 오픈 당시부터 인기를 끌어 수많은 사용자가 찾았던 에프코인이었지만, 2019년 하반기에야 백앤드 재무 시스템을 마련할 정도로 운영이 미흡했다. 이들은 시간을 두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기보다는 그 순간의 고객을 놓치지 않는 것에 집중했다. 장 대표는 “시스템은 마비 직전이고, 직원들은 강도 높은 업무에 녹초가 돼 힘들어했다”며 “그런데도 고객 반응이 나빠질까봐 유지보수를 하지 않고 쉴 틈 없이 서비스를 운영했다”고 말했다.

일부 사용자들은 서버가 허술한 에프코인의 허점을 노렸고, 거래량과 보유 잔액을 조작했다. 이를 통해 더 많은 배당을 챙겼고 에프코인은 대표의 사재까지 투입해 배당금을 지급하려 했지만, 이를 감당하지 못하고 운영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한때의 욕심이 더 큰 화를 부른 것이다.

거래소의 욕심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사용자에게 돌아간다. 코인제스트 사례도 마찬가지다. 코인제스트는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오기 위해 에어드롭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 에어드롭에 대한 세금이 부과되면서 자금난을 겪고, 사용자 자산을 출금해주지 못하는 사태까지 왔다. 국내 거래량 1위까지 기록했었지만, 30억 원 가량의 세금 때문에 존폐위기를 겪는 모습은 내부 운영이 부실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코인제스트는 자구책으로 신규 암호화폐 코즈에스(Coz S)를 발행해 원화 예치금 대신 코즈에스를 지급하겠다고 한다. 오프라인 결제처를 확보해 원화처럼 사용할 수 있게 만들고, 다른 암호화폐로 교환도 가능하게 한다는 설명이다. 또 한 번의 ‘눈 가리고 아웅’식 운영으로 고객 피해가 오히려 더 늘어나지는 않을지 우려된다.

준비되지 않은 암호화폐 거래소에 기회가 찾아오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보고 겪었다. 암호화폐 거래소에 대한 산업 정의와 운영 기준이 법으로 정해져 있었다면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관련 법 제도 마련이 늦어질수록 준비되지 않는 일부 거래소로 인한 고객 피해는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업계가 암호화폐 거래소 법제화를 목놓아 부르짖는 이유다.
/노윤주기자 daisyroh@decente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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