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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03 (월)

북한이 환율·파생상품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개혁·개방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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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김정은 집권 이후 자본주의 체제 비판보다는 생산성 향상이나 지식, 기술 등의 경제 정책을 강조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북한이 발행한 경제 논문에 담긴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다. 외부적으로 자강 제일주의, 국산화 장려 등 폐쇄·고립주의를 내세우고 있지만, 내부적으로는 개혁과 개방을 추진할 준비를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앙일보

북한 관영 조선중앙TV가 지난 7일 자력갱생과 정면돌파를 기치로 내부 선전선동을 위한 자료를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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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이 19일 ‘북한경제연구로 분석한 경제정책 변화:텍스트 마이닝 접근법’이란 보고서를 내놨다. 북한이 발간하는 대표적인 경제 관련 문헌인경제연구에 실린 단어와 사용 빈도를 분석한 내용이다. 김수현 한국은행 전망모형팀 과장은 “1980년대부터 2018년까지 발간된 논문의 제목과 주요어를 컴퓨터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텍스트 마이닝 기법으로 분석했다”며 “통치자별, 시기별, 경제환경 변화에 따른 경제 전략과 정책 변화를 추적한 것”이라고 말했다.

보고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의 집권기를 기준으로 크게 세 시기로 구분했다. 시기별로 논문 주제, 주로 쓰는 어휘 등에서 많은 차이가 나타났다. 김일성 시기(1988~1994년)엔 기술·노동·농촌·농업·공업·자본주의 등이 주제어로 많이 쓰였다. 농업 기반을 다지는 동시에 노동생산성(기술)에 기반을 둔 공업화를 지향하는 경제 정책 방향을 염두에 두고 있었음을 추측할 수 있다.

김정일 시기(1995~2011년)엔 기술·과학·정보·산업·기업 등이 많이 등장한다. 급성장하는 남한과의 경쟁 구도 속에 사회주의 체제 선전을 위해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논문이 유독 많은 것도 특징이다. 김정은 시기(2012~2018년)엔 자본주의 체제를 비판하는 논문이 크게 줄고, 생산·지식·기술·화폐·무역 등의 빈도가 높아졌다. 김 과장은 “지식 강국, 기술 강국 등 단어가 등장하고, 경제 정책이 성장과 실리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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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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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은행제도’, ‘화폐 유통과 환율’, ‘무역이론’, ‘국제화 시대의 경쟁력’ 등 해외 선진사례를 바탕으로 성장 동력 확충이나 발전을 꾀하려는 의도도 엿보인다. 이념 중심 서술에서 벗어나 계량경제 모형을 활용해 다양한 주제를 다루기 시작한 것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손욱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과거 폐쇄주의 시기에는 해외 서적 등에 의존한 논문은 사대주의라고 비판을 받았지만, 김정은 시기엔 파생상품 위험 회피나 환율 예측처럼 구체적인 지식과 기법이 요구되는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고 말했다.

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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