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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1 (화)

[인사이드칼럼] 탄소배출권과 기업의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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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지구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는 온실가스 배출을 억제하기 위해 국내에서 2015년부터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된 이후 배출권 가격이 급등하면서 관련 기업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배출권거래제란 정부가 기업에 온실가스 배출총량(배출권)을 할당하고, 기업은 스스로 온실가스를 감축하거나 배출권 과부족 물량의 거래를 통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도록 하는 제도다. 배출권이 모자라는 기업은 배출권을 구입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들어가고, 배출권이 남는 기업은 이를 시장에 팔아 수익을 얻을 수 있다.

정부는 2015~2025년 기간을 3년·3년·5년 단위로 나눠 계획기간을 설정하고 기간별로 배출권 총량 설정, 업체별 배출권 할당, 배출량·감축량 실적 점검 등을 시행하고 있다.

배출권 거래에는 기준 연도 3년간 온실가스 배출량 평균이 12만5000t 이상인 업체와 2만5000t 이상인 사업장 600곳이 의무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배출권 가격은 최초 t당 7860원에서 출발했으나 상승세를 지속해 올 2월 현재 4만원에 육박하고 있다. 5년여 만에 가격이 5배로 뛰어올랐다. 배출권 가격 급등은 기업이 향후 배출권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해 배출권을 미리 확보해두려고 하는 반면, 사실상 배출권 공급자인 정부는 배출권 공급 물량을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출권 가격 급등에 비상이 걸린 것은 특히 전력회사들이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40%가량을 차지하는 전력회사들은 정부의 할당 배출량이 실제 배출량에 크게 못 미치기 때문에 부족한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배출권 구입을 늘릴 수밖에 없으며, 이것이 배출권 가격 급등의 주요인이 되고 있다. 특히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른 화력발전 증가가 배출권 수요를 부추기는 배경이 됐다. 2018년 기준 석탄화력과 액화천연가스(LNG) 복합 발전량은 2016년 대비 각각 13.7%, 20.5% 늘었다.

배출권 가격 급등은 전력회사들의 수익성 악화로 직결되고 있다. 지난해 5개 국내 화력발전 공기업의 배출권 구입 비용만 1조원이 넘었으며, 민간 발전사들 비용까지 합하면 이를 훨씬 웃돈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발표한 '제2차 기후변화 대응 기본계획'에서 2030년 전환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량을 기존 5780만t에서 1억4050만t으로 대폭 늘렸다. 이 때문에 배출권 가격은 앞으로도 상승세를 지속하고 발전사들의 비용 부담도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탈원전 정책의 궤도 수정을 서둘러야 한다. 그러지 않고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도 기업들의 부담 완화도 불가능하다. 월성 1호기처럼 멀쩡한 원전을 조기 폐쇄하고 신한울 3·4호기처럼 건설 중인 원전마저 멈춰 세우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

배출권 비용을 전력 시장 가격에 반영할 필요도 있다. 현재 전력 시장에서는 연료비만을 반영해 발전기 가동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있으나 유럽처럼 배출권 비용까지 포함시켜 우선순위를 정하도록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연료비가 싼 석탄발전기보다 온실가스를 덜 배출하는 LNG발전기를 우선적으로 돌릴 수 있다.

배출권 비용은 소비자 전기요금에 명시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현재 한전이 발전사들에 전력 구입비 형태로 배출권 비용의 일정 부분을 정산해주고 있는데, 이를 궁극적으로 전기요금에 반영해 소비자의 전기 절약과 온실가스 감축 동참을 유도해야 한다. 지금처럼 전기요금을 장기간 동결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소비자들이 배출권 비용의 존재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정부는 시장 안정 물량이나 기업의 이월·차입 물량 한도를 조절함으로써 가격 안정을 도모하고 증권사 등 제3자의 거래 참여와 파생상품 도입 등을 통해 시장 협소성을 극복해야 한다.

[온기운 객원논설위원·숭실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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