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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9 (일)

[김광일의 입] “이 모든 게 문재인 덕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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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5월10일, 현 정권에게 가장 큰 부정 스캔들이 되어 있는 지난 울산시장 선거가 있기 한 달 전이다. 울산에 내려간 이데일리의 두 기자가 송철호 민주당 후보를 인터뷰한다.

제목이 이렇다. ‘송철호 "노무현 못 다 이룬 꿈, 이번이 기회"’.
‘송 후보는 "김기현 시장이 공약했던 게 하나도 안 됐다. 200만 창조 도시 울산을 약속했지만, 되레 울산 인구는 줄어들고 있다"며 "지난해 9월 시장 출마를 밝히면서도 시장하면 다음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깜짝 놀랐다. 시장 자리의 엄중함을 모르는 것 같다. 기본적인 예의가 아니다"고 일갈했다. 자신이 울산 시장에 당선되면 울산만을 생각하고 울산에 뼈를 묻겠다고 했다. 특히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문덕(이 모든 게 문재인 덕분이다)’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큰 민심이 바뀌었다. 정부나 야당도 민주주의, 국민 존중의 헌법정신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의 선거 슬로건은 ‘정의로운 시민주권시대’다.’

여러분은 이 인터뷰 내용을 어떻게 보셨는가. ‘청와대의 울산 선거공작 사건’에서 "김기현 시장이 공약했던 게 하나도 안 됐다"고 했다. 이번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피고인 송철호는 당시에 피고인 송병기를 대동하고 청와대에 들어가 상대당 후보의 공약은 철저히 무산되도록 사전 모의를 하고, 자신의 공약은 적극 실현되도록 공작을 벌였다는게 적시돼 있는데, 본인은 선거 직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것이다. ‘김기현 후보의 공약은 하나도 안 됐다’고 한 것이다. 우리가 이런저런 부정선거도 봤고, 흑색선전도 더러 봤지만, 당시 송철호 캠프가 보여준 것만큼 비열한 언행은 처음 보는 것 같다. 상대를 거꾸러뜨릴 비밀장치를 몰래 다 만들어놓고 나서 상대를 밀어버린 것이다. 선거법 위반 여부를 떠나서 사람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다.

특히 그 다음 대목이 더 중요하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이문덕’, 이 모든 게 문재인 덕분이다, 는 말이 있을 정도로…’라고 한 부분이다. 실제로 울산이 살기 좋아졌는지 여부는 별도로 하고, 아무튼 울산이 변한 것을 ‘문재인 덕분’이라고 한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김기현 후보를 누를 수 있는 경쟁자가 된 것이 ‘문재인 덕분’이라는 뜻인지, 피고인 송철호는 이제라도 분명하게 답변해야 할 것 같다. 문 대통령의 ‘30년 지기’라는 송철호 시장, 자신의 시장 당선이 ‘문 대통령의 소원’이라고 알려진 송철호 시장, 그래서 청와대 조직 8곳이 나서서 선거공작에 개입한 것으로 검찰 공소장에 적시된 송철호 시장, 그가 ‘이문덕, 이 모든 게 문재인 덕분’, 이라고 했다면, 그 답변은 직접 듣지 않다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자, 이번에는 시장 선거가 있은 뒤 17일 만인 2018년7월1일 뉴시스의 기자와 송철호 당선자는 또 인터뷰를 한다. 제목이 ‘송철호 울산시장 "시민의 편에서 과거 번영 되찾아올 것"’ 이라고 돼 있다.

그 중 한 대목을 그대로 옮겨보겠다. 기자의 질문이다. ‘정책이 아닌 문재인 대통령의 후광으로 지방정권 교체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이 같은 일반의 인식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기자의 질문에 대한 송철호 당선자의 대답이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유행했던 말이 ‘이문덕’이다. 즉 "이 모든 것이 문재인 덕이야"라는 의미였다. 물론 문 대통령의 후광이 컸다. 그렇다고 전적으로 대통령이 지방선거를 치렀다고 할 수는 없다. 오랫동안 축적됐던 민심이반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투표로 표출됐다고 할 수 있다."

자, 여러분은 어떻게 들으셨는가. 선거가 끝난 직후 송철호 당선자 본인의 입에서 ‘이문덕’, ‘이 모든 것이 문재인 덕이야’, ‘문 대통령의 후광이 컸다’, 는 말이 나왔다. 문 대통령이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대통령과 30년 친구라는 그 한 가지 때문에 시장에 당선될 수 있었다는 뜻일까. 아니면, 인터뷰에서 자세하게 밝힐 수는 없지만, 문 대통령과 청와대 사람들이 음으로 양으로 개입해서 선거를 치른 결과 자신이 8번 떨어진 뒤 아홉 번째로 당선될 수 있었다는 사실을 간접적으로 실토하고 있다고 봐야할까.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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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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