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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6 (금)

[정동길 옆 사진관]7년 그리고 다시 멈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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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 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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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실향민 섬 마을을 다시 찾았다. 인천 강화군 교동도 대룡리. 지난 2014년에 개통된 연륙교 교동대교 때문에 지금은 ‘교동도’가 아닌 ‘교동면’으로 적어야 하겠지만, 다리 하나 놓았다고 섬이 육지가 될까? 북한 황해도가 지척인 교동에는 한국전쟁으로 피란 온 이북 실향민들이 많이 살았다. 7년 전에 썼던 “세월이 비껴간 곳, 시간도 멈췄다”(2013년 2월22일) 기사를 다시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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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득남 미용실, 2020년 2월(위) 및 2013년 2월(아래) 촬영. / 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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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강화군 교동도 대룡시장의 시간은 멈춰 있다. ‘연지곤지 식품점’ ‘돼지네 식당’ ‘임득남 미용실’ 등 정겹고 예쁜 이름의 간판을 단 상가 건물은 50여 년 전 모습 그대로다. 북한과 지척이라 민간인통제선 지역으로 묶인 탓에 교동도는 개발이 뒤처졌다. 한국전쟁 때 피란 온 실향민들은 고향에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 둘 섬을 떠났다. 농사를 짓던 원주민들도 교육 때문에 자식을 떠나보냈다. 빈집이 늘어나 한산한 지금의 대룡시장은 시장이라고 부르기 쑥스러울 정도. 몇몇 상가들만이 쓸쓸히 시장을 지키고 있다.

“또 술 마셨나보지.”

교동이발관 이발사 지광석 할아버지(74)가 과음했나보다. 한 번 마시면 며칠씩 문을 닫는다고 이발관 옆 동산약방에 모인 노인들이 푸념한다. 올겨울 눈길에 미끄러져 팔에 깁스도 보름 넘게 했는데 술사랑은 여전하다며 걱정이다.

나의환 할아버지(82)가 운영하는 동산약방은 50년이 넘었다. 동네에 의원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동네 노인들은 나 할아버지가 제조해주는 약이 아주 잘 듣는다고 편을 든다. 아픈 데가 없더라도 농한기에 심심한 노인들은 동산약방을 찾는다. 연탄난롯가에 둘러앉아 마을 이야기를 하다보면 한두 시간이 후딱 지나간다. 동네 사랑방 노릇도 하는 약방이다.

건넛집 시계수리방은 수용 인원이 세 명이다. 3.3㎡(1평) 남짓해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도 서로의 무릎이 닿는다. 그래도 다리가 불편한 시계수리공 황세환 할아버지(75)를 위해 물도 떠다주고 말동무 해주는 노인들이 모여든다. 황 할아버지는 도와주는 동무들이 고마워 봉지커피 한 잔씩을 대접한다.

“내년에 다리가 생긴다니까 좀 좋아지겠지.”

강화에서 배 타고 15분이면 닿을 수 있는 교동도가 내년에 연륙교로 연결된다. 연륙교가 생기면 교동도 대룡시장의 멈춰진 시계가 다시 돌아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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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룡시장 시계방, 2020년 2월(위) 및 2013년 2월(아래) 촬영. / 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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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만에 찾은 대료시장의 시계는 다시 돌고 있었다. 지난 2017년부터 추진하고 있는 골목길 조성사업과 더불어 카페, 제과점, 공방 등 새로운 가게들이 문을 열었다. 눅눅해 보이던 담장과 벽에는 동화 같은 벽화로 산뜻해졌다. 코로나19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손을 잡고 찾아온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동네 개와 고양이만 어슬렁거리던 시장 골목에 물건을 팔고 사고 묻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쉬운 마음도 들었다. 피난민 이야기를 찾아볼 수 없는 벽화, 적산 가옥의 특색을 살라지 않는 리모델링 등 다른 지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천편일률적인 모습들이 군데군데 알 박기를 한 것처럼 이질적인 모습이었다. 인기있는 낙후 지역들이 겪는 젠트리피케이션도 피할 수 없어 가게 임대료도 부쩍 올랐다고 한다. 그래도 아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옛 가게들을 보면 마음이 훈훈하다. ‘임득남 미용실’, ‘동산 약방’, ‘교동 이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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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룡시장의 작은 시계방에는 황세환 할아버지를 기리는 밀납인형이 전시돼 있다.(위) 아래 사진은 2013년 2월 황세환 할어버지가 시계를 고치던 모습이다. / 김창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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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수리방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가게 주인인 황세환 할아버지가 지난 2016년 4월 돌아가셨다. 교동 토박이었던 황세환 할아버지는 시계 수리 기술을 배우기 위해 외지로 나갔던 20대 후반의 5년을 제외하면 줄곧 고향이 지켰던 할아버지였다. 멈추었던 대룡시장의 시계는 다시 돌고 있지만, 정작 고장난 시계를 고치던 황세환 할아버지의 시계는 영원히 멈춘 것이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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