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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판 커지는 미국의 檢亂… 1100여명이 법무장관 사퇴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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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측근 구형 완화 시도 반발

"법 집행을 이용해 적을 벌주고 동지를 보상하는 정부는 독재국"

워터 게이트 이후 초유의 사태

미국 트럼프 정권의 수사 개입 논란과 관련해 전직 검사·법무부 관료들이 법무장관 사퇴를 요구하는 등 검찰 조직의 반발이 전국적 검란(檢亂)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에서 1970년대 대통령과 법무장관이 민주당 도청과 사건 은폐를 공모했던 워터게이트 사건 이후 검사들의 이런 반발은 처음 있는 일이다.

전직 검사들과 법무부 관료 1143명은 16일(현지 시각) 윌리엄 바 법무장관(69)의 '대통령 측근에 대한 구형(求刑) 완화 지시'와 관련, 바 장관에게 "법무부의 법치 수호 위상을 훼손했으므로 사퇴하라"고 요구하는 서한을 공개했다. 과거 공화당·민주당 정부에서 지명된 전직 검사장급부터 검사, 수사관, 전 법무부 차관과 대변인 등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서한에서 "법 집행을 이용해 정적(政敵)을 처벌하고 동지들을 보상하는 정부는 독재국가"라고 했다. 앞서 워싱턴 DC 연방 검찰은 트럼프 캠프가 2016년 대선에서 러시아와 공모했다는 '러시아 스캔들'에 개입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로저 스톤(67)에게 지난 10일 최대 9년형을 구형했다. 스톤은 대선 때 트럼프의 비선(祕線) 참모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로 불만을 표시하자 법무부는 구형량을 낮춰달라고 다시 요구했고, 이에 격분한 담당 검사 4명이 12일 "사건에서 손을 떼겠다"고 반발했다.

이런 분위기를 감안한 바 장관은 13일 방송에 나와 "트럼프 대통령이 자꾸 형사 사건에 대해 트윗을 해 일을 못할 지경"이라고 했다. 바 장관은 지난해 2월 취임 이래 트럼프의 이익을 대변해왔기 때문에 이 발언은 이례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뉴욕타임스(NYT)는 당시 바의 측근을 인용해 "트럼프의 지속적인 법무부·검찰 비난에 법무부 소속 공무원들이 들고일어날 판이어서 바 장관도 입을 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했다.

하지만 전직 검사 등은 이에 만족하지 않았다. 이들은 "대통령의 간섭은 옳지 않다는 장관의 뒤늦은 인정은 환영한다"면서도 "바 장관의 말보다 중요한 건 그간의 (대통령에게 아부한) 행위다. 진정성을 보이려면 사퇴하라"고 했다.

바 장관이 러시아 스캔들에 연루된 마이클 플린(61) 전 백악관 국가안보 보좌관에 대해 15일 "기소를 재검토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도 이런 반발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플린에 대해선 지난해 위증죄로 징역 6개월이 구형됐다가 집행유예로 낮춰졌는데, 이젠 기소가 완료된 사안까지 뒤집으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스캔들 수사를 지휘했던 제시 리우(47) 전 법무차관의 낙마도 검사들에게 충격을 안겼다. 리우는 재무장관 선임고문으로 내정됐다가 지난 10일 돌연 트럼프가 지명을 철회, 내쫓기다시피 공직에서 물러났다.

NYT는 16일 검찰 내에 "정치 관련 수사에 잘못 손댔다가 정권의 보복을 당하는 것 아니냐"는 공포와 "이렇게 구형량이 마구 뒤집히면 판사가 검사의 구형을 신뢰하겠느냐"는 우려가 퍼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분위기가 전직 검사와 법무부 관료들의 성명으로 표출됐다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현직 연방검사 41명도 지난 14일 성명을 내 바 장관을 규탄했다. 바 장관이 최근 필라델피아·볼티모어·샌프란시스코 지검 등을 거명해 "강력 사건을 제대로 못 다뤄 범죄율이 늘었다"고 말한 데 대해서다. 진보 성향이 강한 지역 검사들이 정권의 각종 수사 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자 질책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검사들은 "바 장관이 거악(巨惡)은 척결하지 않고 가난한 소수 인종 때려잡기 실적만 독촉하면서 정의를 오도하고 있다"고 했다.

바 장관은 이런 반발에 대해 아직 입장을 내지 않았다. NYT 등은 "정권의 개입으로 검찰 사기가 와해되다시피 한 상태"라며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검란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정시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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