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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5 (토)

‘베트남 민간인 학살’ 마주한 참전 군인의 손녀, 서로 다른 기억을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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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 ‘기억의 전쟁’ 이길보라 감독 인터뷰]

“내가 똑똑히 봤어, 한국군이었어”

참전 군인의 손녀인 걸 알고도

밥 한술 뜨고 가라 권유한 생존자

어떻게 그렇게 관용 베풀 수 있는지…

생생한 증언 담아 영화로 제작했죠

여자는 ‘전쟁’을 말하면 안 되나요?

“군대 안 간 여자가 뭘 야냐”라고 해

공적 기억 대부분 ‘남성 언어’로 기록

이번엔 오롯이 여성 시선으로 접근

피해자의 관점과 생각 느껴보셨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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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로 1등을 하고 상장과 표창장도 많이 받던 모범생이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갑자기 학교를 그만뒀다. 학교에선 가르쳐주지 않는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어서였다. 스스로 여행자금을 마련해 8개월 동안 인도, 네팔, 티베트, 베트남 등 아시아 8개 나라를 여행했다. 돌아와서 그 경험을 담아 만든 게 단편 다큐멘터리 <로드스쿨러>(2008)와 책 <길은 학교다>(2009)이다.

“할아버지, 저 베트남에 여행 다녀왔어요.” 훈장을 자랑스러워하는 베트남 참전 군인 출신의 할아버지는 “베트남 어디에 갔었냐”고 묻고는 “나도 다낭에 갔었다”고 했다. 하지만 얘기가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뭔가를 떠올리는 듯하더니 침묵했다. 몇년 뒤 할아버지는 베트남전 고엽제 후유증에 따른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영화를 공부한 그는 자전적인 얘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들었다. 부모가 청각장애가 있는 농인이었지만,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청인으로 태어난 그는 입말보다 손말(수어)을 먼저 배웠다. “사람들은 동정하지만 내가 사는 세상은 지극히 정상이고 반짝거린다는 얘기를 가장 먼저 하고 싶었어요.” 지난 14일 서울 연남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길보라 감독이 말했다. 그의 첫 장편 데뷔작 <반짝이는 박수 소리>는 2015년 개봉해 호평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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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작이 개봉되던 그해 초, 그는 다시 베트남에 갔다. 베트남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이 있었다는 얘기를 듣고는 좀 더 알아보려고 ‘베트남 평화기행’에 참가한 것이다. 1968년 다낭 인근 퐁니·퐁넛 마을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 사건의 생존자 응우옌티탄을 처음 만난 건 그때였다. “탄 아주머니는 제가 참전 군인의 손녀인 걸 알고도 따뜻한 밥 한술 뜨고 가라고 했어요. 그렇게 당하고도 어떻게 관용과 화해를 베풀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어요. 문득 ‘이분을 위해 뭔가를 해야겠다. 영화를 만들어보자’고 생각했어요.”

몇달 뒤 응우옌티탄은 다른 마을의 학살 생존자와 함께 한국을 찾았다. 시민평화법정에 증인으로 나서기 위해서였다. 이길보라 감독은 카메라를 들고 두 사람을 따라다녔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였다. 세월호 천막을 본 그들은 “저게 뭐냐”고 물었다. 설명을 듣고는 곧장 천막으로 다가가 서명을 받는 책상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그들은 책상에 매달린 천에 새겨진 단원고 학생들의 얼굴과 이름을 하나하나 들여다봤다. “그들이 베트남 희생자 위령비 앞에서 하던 걸 여기서 똑같이 한다는 걸 알 수 있었어요. ‘그들의 태도에서 배워야 한다. 반드시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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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018년 베트남에 여러 차례 가서 학살 생존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카메라에 담았다. 농인인 딘껌은 손짓으로 당시 기억을 전했다. ‘내가 똑똑히 봤어. 한국군이었어.’ 입말과 손말 모두 구사하며 농인과 청인의 두 세상을 잇는 삶을 살아온 이길보라 감독은 자연스럽게 딘껌의 손말을 이해하게 됐다. 나중엔 딘껌의 가족보다 더 그의 말을 잘 이해하는 걸 보고 마을 사람들은 신기해했다. 응우옌티탄은 그날의 아픈 기억을 꺼내며 “꼭 사과받고 싶다”고 했다.

반면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은 여전히 사실을 부인하거나 침묵한다. 그들의 기억은 베트남 사람들의 기억과 다르다. 이길보라 감독의 카메라는 참전 군인을 일방적인 가해자로 몰아붙이지 않는다. 그저 그들의 처지를 담담하게 보여줄 뿐이다. “애초 전쟁의 참혹함을 고발하는 영화를 만들고 싶진 않았어요. 학살의 진실을 파헤치는 게 아니라 피해자들과 참전 군인, 우리 국가의 서로 다른 기억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영화 제목을 <기억의 전쟁>(27일 개봉)이라 붙인 건 그래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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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여성 감독, 여성 프로듀서, 여성 스태프 등 전원 여성 제작진이 만들었다. 이길보라 감독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지금까지 공적 기억의 대부분은 남성의 언어로 기록돼 왔어요. 이번엔 비남성의 언어, 여성의 시선으로 접근해야 했어요. 영화를 만들 때 ‘군대도 안 간 젊은 여자가 전쟁에 대해 뭘 알아?’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전쟁이 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이들이 여성·장애인·아이들인데, 왜 우리가 말하면 안 되나요? 그들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게 우리들 몫이라고 생각한 까닭입니다.”

응우옌티탄은 영화 마지막에 “참전 군인이 와서 손을 잡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진심 어린 사죄를 하지 않는다. “한국과 베트남의 외교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쉽게 풀 수 있는 게 아니라는 말을 해요.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걸 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돈보다도 일본 정부의 진심 어린 사죄를 원하는 것처럼 그들도 마찬가지예요. 피해자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생각하는 것, 영화를 통해 그걸 느꼈으면 좋겠어요.”

서정민 기자 westm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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