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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2 (목)

[편집자 레터] 北으로 간 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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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이한수 Books팀장


영화 ‘기생충’ 봉준호 감독의 가족사를 온 국민이 알게 됐습니다. 소설가 박태원(1909~1986)이 외조부란 사실이 다시 알려졌지요. 박태원은 6·25전쟁 중 북으로 갔습니다. 만약 봉 감독의 어머니인 박태원의 둘째 딸 소영(83)씨가 아버지를 따라갔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생각만 해도 끔찍합니다. 아카데미상 4관왕 업적을 이룬 봉준호 감독은 없었을 테니까요. 맏딸 설영(1936년생)씨는 아버지가 있는 북으로 갔습니다.

광복 후 전쟁 기간 유명 문인들이 여러 이유로 북에 갔습니다. 홍명희, 이기영, 임화, 이태준, 김남천, 오장환, 이용악, 정지용, 김기림, 백석, 한설야 등입니다. '알맹이는 다 올라가고 남에는 쭉정이만 남았다'고 할 정도였지요. 그런데 어떤가요. 북으로 간 문인들이 예술혼을 펼쳤다는 소식 들은 적 없습니다. 최근 증보판이 나온 정진석 한국외대 명예교수의 '전쟁기의 언론과 문학'(소명출판)에 월북 문인 이야기가 자세합니다.

박헌영을 추종했던 임화는 '제국주의 스파이 변절자'로 지목되어 처형당했습니다. 한설야는 "임화를 비롯하여 이원조, 김남천, 이태준 등 파괴 종파 도당들이 제국주의 침략자들에 대한 굴종과 투항을 권고했다"고 동료 문인을 제거하는 데 앞장섰지만 자신도 끝내 숙청당했습니다. 김일성은 연민이 있었는지 노동교화소에 있던 한설야에게 송아지 고기를 내려주었답니다. 한설야가 일갈했다네요. "송아지 고기는 풋내 나서 안 먹소!"

북으로 간 문인들이 남에 있었다면 어땠을까요. 슴슴한 국수 좋아한 백석, 얼룩배기 황소 그리워한 정지용의 아들·손자가 노벨상을 탔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이한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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