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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7 (금)

100년 만에 찾아온 그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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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생각] 책이 내게로 왔다

3월1일의 밤

권보드래 지음/돌베개(2019)

한겨레

어떤 연구자는 역사적 영웅의 어깨에 내려앉은 무게를 덜어주고 싶어 글을 쓴다. 태극기를 들고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다 순국했다는 유관순. 3·1 운동의 민족성과 희생을 논할 때 어김없이 소환되는 그녀의 자리에 불편함을 느끼자 수많은 의문이 쏟아져 나온다. 1919년 3월1일 서울에는 정말 태극기가 휘날렸을까? 만세소리는 독립을 이뤄냈다는 환희의 노래였을까, 독립을 염원하는 안간힘이었을까? 탑골공원에서 장터로, 다시 공장과 산봉우리로 시위를 이끈 이는 누구인가? 3·1 운동에 공존하는 평화와 폭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반도를 넘어 세계로 지평을 넓히고, 문학과 역사를 오가며 답을 찾아가는 동안 3·1 운동에 대한 애정은 날로 깊어졌지만 그만큼 머뭇거리는 일도 잦았을 것이다. 분명하고 명쾌한 결론을 기대하고 시작했다면 얻지 못했을 질문들을 잔뜩 끌어안은 채.

그러나 수십만 명이 얽혀 있는 100년 전 사건에 대한 객관적이고 공정한 앎이라는 게 가능할까. 내 곁에 있는 한 사람의 속내를 정확히 알지 못해 애태우는 날이 허다한데. 10여 년에 걸쳐 3·1 운동에 가닿는 16개의 길을 내고도 권보드래는 ‘나가는 글’에 이렇게 쓴다. “3·1 운동을 만나면 길을 잃는다. 여전히 그가 낯설다. 새롭다. 처음 들어선 고장 같다.”

한겨레

3·1 운동에 대한 크나큰 사랑으로, 자신의 무능을 탓하며 눈물짓는 저자 옆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작 ‘찾아보기’를 조금 더 충실히 만드는 일뿐이었다. 1919년 전국 곳곳의 밤낮을 따라가다 보면 늘 초면의 누군가가 있었다. ‘민족대표’임을 자임하며 혼자 만세를 불렀던 41살 윤기호, 빼앗겼던 경작권을 되찾을 수 있다기에 만세를 외친 40대 농민, 인부들에게 15전씩 쥐여 주며 만세를 의뢰했던 24살 유장호, 생명의 위협을 느껴 어쩔 수 없이 만세에 동참했다가 무더기로 끌려간 무명의 마을 사람들, 3·1 운동 직후 사회에 눈뜨며 일본 유학을 결심한 22살 정금죽. 이 사람들이 모두 한마음이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자신의 삶을 향한 사랑의 크기만큼은 비슷하지 않았을까. 때로는 사사롭고 때로는 정의로웠던 마음이 모이고 모여 결국 ‘모두가 지켜낸 3·1 운동’의 신화가 일궈진 게 아니었을까. 심지어 만세 한 번 부르지 않았지만 평생 3·1 운동의 영향 아래 살아갔던, 누군가의 할아버지이자 삼촌이고 어머니이자 언니였을 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검색하며 아무리 발버둥 쳐도 역사에,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빚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숙명을 거듭 마주하곤 했다.

만약 내가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성숙해질 수 있었다면, 책 만드는 일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원고를 옆에 끼고 세상의 눈높이를 가늠하면서 나는 조금씩 더 큰 원을 그려나갈 기회를 누렸다. 질문하고 사랑하는 순간을 잃지 않는다면, 비록 흔들리고 헤매는 생이더라도 빛이 될 수 있음을 <3월 1일의 밤>을 만들며 알게 됐다. 내게로 온 이 배움을 오랫동안 잊지 않으면 좋겠다.

윤현아 돌베개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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