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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22 (수)

“한일관계 개선 위해선 활발한 ‘지방외교’가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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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행정연구원 ‘한일관계와 지방외교’ 세미나 개최

세계일보

얼어붙은 한·일 관계를 회복하려면 양국 정부 간 외교적 노력에 더해 지방정부 차원의 외교를 통한 민간 교류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학계를 중심으로 힘을 얻고 있다. 이러한 ‘지방외교’는 자국 이익을 우선시하는 국가주의식 외교와 달리, 양국 시민 간 국경을 넘는 화해·협력을 가능하게 해 궁극적으로 양국 관계 발전 및 세계 민주화에 기여한다는 게 학계 판단이다.

◆“지방외교, 한일 간 역사 화해를 위한 중요 자원”

한국행정연구원(원장 안성호)은 22일 서울 은평구의 연구원 강당동 2층 대강당에서 제17차 공공리더십 세미나를 열고 ‘한일관계와 지방외교’를 주제로 발표 및 토론을 진행했다. 안성호 원장은 인사말에서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에 있다가 최근 진정 국면에 접어선 상태지만, 여전히 뿌리깊은 갈등 요인이 남아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21세기 동아시아 질서에서 우호적인 한일관계의 중요성이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근래 범세계적으로 권위주의적 비민주주의가 득세하고 자유민주주의 쇠퇴 징후가 나타나는 상황에서 민주국가인 대한민국과 일본이 동아시아 평화와 번영을 위해 수행해야 할 역사적 사명이 중대하다고 본다”고 했다.

아울러 안 원장은 “한일관계의 개선과 동아시아 평화는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웃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무엇을 공유할지를 상상해보고 작은 일부터 실천함으로써 성취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한국과 일본의 지방정부와 시민사회가 감당해야 할 역할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세미나에선 주일대사를 지낸 이수훈 경남대 교수(정치외교학)의 사회로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일본학)가 주제 발표를 했다. 토론에는 임승빈 명지대 교수(행정학)와 홍진이 지방자치인재개발원 교수, 황혜신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나섰다.

양 교수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양국 간 교류가 줄곧 확대돼 왔지만 그만큼 갈등도 커진 상황을 ‘한일관계의 이중주’라고 설명했다. 그는 “인적, 물적 교류 확대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대립과 갈등이 오히려 심화되는 동북아 패러독스(역설)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또 “체제 갈등, 이념 대립, 역사 논쟁, 영토 분쟁 등으로 점철된 동북아 지역의 분열상은 중앙정부 간 대립과 갈등의 산물”이라고 평가했다. 지금의 양국 갈등은 정부 주도 외교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양 교수는 “한일 간, 중일 간 역사 화해와 상호 이해를 위한 지방정부와 시민단체, 지식인 연대가 주도하는 시민교류와 통상협력은 다양성과 중층성을 지닌 점진적인 네트워크 구축으로 이어져 역사 화해를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일과 프랑스 간 화해와 협력은 수많은 양국 간 지방정부와 시민교류의 축적이었다”며 “한일 양국 지방정부의 국제 교류와 국제 협력의 경험은 역사 화해와 상호 이해를 추동한 중요한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양국 간 역사 인식 차이도 인지해야”

토론자들은 양 교수의 발표에 대체로 공감하면서도 한일 간 역사 인식은 왜 다른지, 지방외교를 하기 위한 국내 인프라는 제대로 구축돼 있는지 등을 살펴볼 필요도 있다고 했다. 임 교수는 “양 교수의 문제의식에는 이견이 없다”고 했다. 다만 “지자체 중심의 국제 교류는 다른 국가의 지자체와의 자매결연이나 우호교류가 대부분을 차지하는 게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지방정부의 국제화 수요 다양화·고령화 추세에 따라 보다 체계적이고 효율적인 지방정부 국제화 지원기능 강화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임 교수는 또 최근 인구 고령화 및 인구 감소에 따른 지자체의 소멸 위기 역시 지방외교를 통한 민간 교류 활성화로 극복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홍 교수는 본인의 일본 유학 시절을 떠올리며 양국 국민의 역사 인식 차이를 좁히는 것이 근본적 해결책의 하나가 될 수 있다고 했다. 홍 교수는 “일본은 패전이란 용어를 쓰지 않고 종전을 ‘기념’한다”며 “한편으로 자신들이 피해자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고 했다. 식민지배와 수탈 등은 여느 제국주의 시대에 볼 수 있는 모습인 만큼, 특별히 일본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일본인들이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대다수 일본 청년들이 남경대학살, 731부대, 종군 위안부에 대해 모르는 건 아니다”라며 “제국주의와 지금의 ‘나’를 단절시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양국 간 역사 인식의 차이를 극복하려면 폭넓은 교육 교류가 필수라는 게 홍 교수 판단이다. 그는 “전후 관계 개선에 결정적 노력은 독일의 교육제도에 있다고 본다”면서 “독일은 교육을 통해 후세에도 자국민들이 전쟁의 책임과 기억을 방기하지 않도록 노력해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일 양국에서 최소한의 범위에서라도 역사 교육의 공통 부분을 만들어 상호 공통의 역사 인식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 노력을 기울였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황 위원은 “지방외교를 통해 한일 간 공통적인 문제를 대응하는 것도 가능하다”며 “이를테면 일본은 가장 고령화된 국가이고, 우리는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국가다. 이런 주제를 함께 의논하고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한편 사회를 본 이 교수는 질의 응답에서 주일대사 시절 한·일 위안부 합의와 관련한 일화를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2017년 10월 도쿄에 갔다. 큰 이슈가 위안부 합의였다”고 떠올렸다. 그는 “일본 아베 총리가 위안부 합의에 대해 애착이 강했다. 국내에서 합의를 파기하고 재협상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아베 총리에게 인사를 하러 갔는데 굉장히 싸늘하게 대하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결국 피해자들의 동의가 없으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배민영 기자 goodpoin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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